[공경 포커스] 두 개의 질문과 하나의 길

기사입력:2017-09-24 01:35:00
[공유경제신문 지미옥 기자]
질문 하나

빈곤국가 사람들은 왜 가난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ARS 후원, 결연, 정기후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기부를 하고 있는데, 국제사회가 빈곤 퇴치를 위해 수십 년째 천문학적 규모의 원조를 해 오고 있는데, 그들은 대체 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질문 둘

과학기술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구 반대편 사람들끼리 빛의 속도로 소통하고, 탐사 로봇이 화성을 누비고, 인간 유전자가 해독되고, 복제된 생명체가 줄줄이 태어나고 있는 21세기에 왜 인류의 절반 이상은 과학기술로부터 최소한의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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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들에 답하려는 순간 우리는 곧바로 순환논리에 빠진다. 그들이 가난한 건 산업의 토대가 될 과학기술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가난을 벗어나려면 과학기술 발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기엔 그들은 너무 가난하다… 무한루프처럼 반복되는 이 난제들을 지금껏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고, 지구촌의 빈곤 또한 당연히 사라지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은 골치 아픈 해결책을 고민하느니 차라리 손쉬운 방법을 택하기 시작했다. ‘빈곤은 저들의 숙명’이라는 오랜 편견이 그것이다. 아무리 도와줘도 소용 없더라는 ‘경험적 진실’이 그런 편견을 뒷받침한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90%의 사람들이 과학기술로부터 최소한의 혜택도 못 받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과연 과학기술이 인류 전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소수의 행복을 위한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이 있다.

그러나 여기, 새로운 길을 찾아낸 과학기술자들이 있다. 기부와 원조의 한계를 극복하고 과학기술을 인류 모두의 것으로 만듦으로써 빈곤 퇴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길! 빈곤 문제라는 골치 아픈 미궁에서 인류를 탈출시킬 명주실의 이름은 다름 아닌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다.

적정기술이란 ‘현지의 자원과 노동력을 이용하여, 현지인들의 필요에 맞게,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개발·운용되는 기술’을 말한다. “빈곤은 대량생산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을 통해서만 해결된다”고 주장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손물레 운동’(1920)이 적정기술의 기원이다. 이후 E. F. 슈마허가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에서 주창한 ‘중간기술’을 거쳐 '소외된 90%를 위한 디자인'(2007)을 내세운 폴 폴락에 이르기까지, 개념적·실천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며 이어져 왔다.

지난 2009년에 설립된 (사)국경없는과학기술자회(SEWB)는 아시아, 아프리카, 남태평양까지 이름 그대로 국경을 넘나들며 개발도상국에 적정기술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스펙트럼과 하나의 가치

적정기술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사막 지역 주민들의 물 긷는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개발된 ‘큐드럼(Q-drum)’이 단순하면서도 적정성을 극대화한 이 분야의 아이콘이다. 오염된 물을 즉석에서 정수해 마실 수 있는 ‘라이프 스트로 life straw’는 현장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갖춘 대표적 제품이다.

모터 대신 두 발로 밟아서 작동시키는 간이펌프 ‘머니메이커(moneymaker)’는 이름 그대로 아프리카 농민들의 소득 증대에 기여했을 뿐 아니라, 현지 사회적기업을 통해 수십만 개의 판매고를 올림으로써 적정기술 분야의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소외된 계층을 위한 기술이 ‘이윤 추구’라는 기업의 목표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폴 폴락의 주장이 현실로 입증된 셈이다.

사탕수수 같은 현지 자원들을 활용한 숯 제조기(MIT에서 개발), 열효율을 늘려 몽골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크게 개선한 축열기 ‘지 세이버(G-saver. 굿네이버스에서 개발, 보급한 대한민국 1호 적정기술 제품) 등은 슈마허가 말한 ‘중간기술’에 부합하는 제품이다. 전기가 안 들어가는 히말라야 고산지역 주민들을 위한 태양광 발전기나 가난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태양열 보청기처럼 하이테크가 적용된 첨단제품들도 있다.

종류와 수준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결국 ‘지속가능성’으로 수렴된다. 현지에서 만들 수도 없고 수리할 수도 없는 제품을 덥석 갖다 주는 건 지속가능하지 않다. 선진국에서 파견된 기술진이 죄다 알아서 ‘해 주는’ 것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외국 기업이 판매나 유통을 전담하는 것 역시 지속가능한 방법이 아니다. 지금까지 각국 기업들과 국제사회의 원조가 번번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적정기술자들은 치밀한 사전조사를 거쳐 현지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을 개발·보급한다. 낯선 소재들 대신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친환경 재료를 사용한다. 고장 나면 쓰레기로 전락하는 ‘일회용품’이 되지 않도록 유지·보수 방법을 가르쳐 준다. 현지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 설립을 지원함으로써 ‘자립’이라는 궁극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런 조건들이 만족되지 않으면 그 어떤 기술도 적정기술로서 의미를 갖지 못한다.

적정기술은 기술의 원형이 회복된 기술이다. 원래 기술은 적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적정이라는 수식어를 동어반복처럼 결합한 적정기술은, 시장만능주의가 만연한 현대 기술현상 속에서 잃어버린 기술의 적정성을 회복하려는 노력의 결과로 정의된 기술이다.

지미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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