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IVE 산책] 그들은 왜 기부하는가

기사입력:2020-08-22 15:00:00
공유경제신문 박재준 기자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많이 버는 만큼 많이 내라”

미국은 기부의 천국이다. ‘기부하지 않으면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들은 기부와 자원봉사를 통해 공교육을 바꾸고, 소외계층의 사람에 변화를 주는 등 사회 변혁을 이루어왔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추신수 선수는 1억 3천만 달러라는 대형 계약을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 계약 뒤에 숨겨진 기부에 대해 밝혀 또 한 번 주목을 받았다. 추신수는 “많이 버는 만큼 많이 내야 한다”며 미국 특유의 기부 문화에 대해 “텍사스 같은 경우 1억 달러를 계약했을 때 자동으로 100만 달러(한화 약 10억) 기부하는 게 옵션으로 되어 있다”고 말했다. 계약금의 1%가 자동 기부되는 것이다.

미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도록 교육을 받고 실천을 해왔다. 기부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의무이고 책임인 것이다. 일찍이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록펠러, 포드 등 미국 사회의 기초를 다진 인물들에서부터 조지 소로스, 워렌 버핏, 빌 게이츠까지 성공한 미국인들이라면 거의 모두 거액의 기부자금을 가지고 기부재단을 설립한다.

워렌 버핏은 “열정은 성공의 열쇠이며, 성공의 완성은 나눔이다”고 말했다. 또, 빌 게이츠는 “사회로부터 얻은 재산을 다시금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기부 운동에 참여하는 이유”라고 밝힌 바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자신이 보유한 회사 주식을 ‘실리콘밸리 커뮤니티 재단’에 기부했다. 미국의 슈퍼리치들은 자신들의 부를 대물림하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사회 환원에 더 적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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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lipartkorea

이렇듯 기부는 미국 문화와 역사의 가장 중요한 구성요소이다. 미국인들은 후원금이나 자산 기부 등 금품기부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나누는 자원봉사에도 적극적이다. 미국 성인의 90%가 기부활동에 참여한다고 응답했는데, 그중 70%가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기부하는 자원봉사를 실천하고 있다고 한다. 연간 수십억 달러를 기부하는 슈퍼리치들이 있는가 하면 매달 자신의 유무급 휴가를 이용해 자원봉사를 하거나 지정단체에 소액 기부금을 보내는 평범한 이들도 있다.

이처럼 미국인들이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일각에서는 미국의 슈퍼리치들이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가 조세감면 혜택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주로 자본 이득으로 재산을 축적하는 슈퍼리치들은 근로소득 세율보다 더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등 세금에 대한 부담은 오히려 적은 편이다. 기 소르망 교수는 박애적 기부를 통한 슈퍼리치들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는 미국의 정신문화적 전통에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자수성가형 인물들이 대부분인 미국의 갑부들은 성공에 이르기까지 정말 많은 행운이 따라준 것에 감사하며 성공한 후에는 자신이 누렸던 그 행운을 다른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모든 기부가 착한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

인류를 위해 좋은 일을 했다는 명분 아래 모든 기부 활동이 다 옳은 일이 될 수는 없다. 기부 활동 방향을 설정하고 행하는 사람들의 생각만큼이나 기부문화는 복잡 미묘하다. 어떤 정치인이나 기업인, 유명인들은 기부를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새롭게 창출하거나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하기도 한다.

남의 아이디어를 훔쳐 돈을 벌었다는 비난을 받는 빌 게이츠와 대통령 재직 당시 성추문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빌 클린턴은 기부 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시키기도 했고, 지구 온난화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어 노벨평화상을 받은 앨 고어는 정작 자신은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저택에 사는 등 이중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선행을 자랑삼는 일부 기부자들은 과시욕 있는 국가수반 또는 기업인들과 마찬가지로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 모든 양상 또한 한 사회가 돌아가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모습이라고 기 소르망은 말한다. 그들이 마무리 어떤 의도를 가지고 기부 활동을 했다고 해도, 그들로 인해 혜택을 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기부는 받는 사람만큼이나 베푸는 사람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좋은 일 좀 했다고 박물관이나 학교 건물에 이름을 남기는 일부 슈퍼리치들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준다는 것만이 아니다. 옳다고 생각하는 좋은 일을 위해 자신의 재산과 시간을 베풂으로써 사회적, 인간적, 정신적 혜택을 얻는 것이야말로 기부의 미덕이다. 기부자든, 자원봉사자든, 기부단체 운영자든, 베푸는 사람들은 자신의 시민정신과 영혼의 고취를 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부 행위와 같은 비영리 분야는 국가나 시장에 덧붙여진 분야가 아니라 별도로 존재하는 제3의 영역이다. 국가나 시장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보를 추구하면서 시민정신과 유대를 강화한다. 이것이 바로 기부의 힘이다.

미래 한국, 기부 문화의 길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러하듯 한국에서도 사회적 문제가 공론화될 때 좌파와 우파 또는 진보와 보수가 대립한다.
전자가 국가의 역할과 사회연대를 우선시한다면 후자는 자유시장경제와 개인의 책임의식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유사회를 좀 더 면밀히 관찰해 보면 이러한 이분법적 대립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익이나 권력 추구가 아닌, 나눔을 실천하려는 관대한 마음이 동기를 부여하는 박애주의적 기부활동이 광범위한 사회 영역인 제3섹터를 형성하고 있음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나눔 정신을 중시하고 가족과 가문, 지역과 국가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돈을 내어놓고 헌신하는 문화가 살아있다. 문화예술, 연구 및 교육 분야에서 펼치는 한국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활동도 이러한 고유문화를 토대로 한다. 일각에서는 나눔 활동이 기부자의 이름을 드높이려는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는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큰 문제가 될 것은 없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부해야 비로소 나눔의 효력이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수한 마음을 측량할 길도 없거니와, 얼마나 효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지야 말로 나눔의 당위성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기부자가 미술관을 짓고, 장학금을 쾌척하고, 병원을 설립한 이유가 개인의 영예를 위해서든, 천국에 가기 위해서든, 도덕적 의무감에서든, 수혜자의 입장에서는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지 않는가?

사실 대부분의 기부 행위에는 순수한 의도와 조금 덜 순수한 이유들이 혼재되어 있다.
한국에는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가장 폭넓게 나눔 활동을 펼치는 대형 기부단체나 재단들이 있고 역사와 문화 속에 깊이 뿌리 내린 박애정신을 바탕으로 일상에서 나눔을 실천하는 시민들이 있다.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상부상조하는 전통적인 박애적 나눔 정신은 도시화가 진행된 과거 시간 동안 감춰져 있었지만, 다시금 사회적 약자를 돕고 자연을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수많은 봉사단체를 통해 새로이 피어나고 있다.

한국 사회를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드는 일에는 정부보다 사회단체나 재단들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수많은 기부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원봉사자들의 참여를 통해 온 사회가 같이 책임을 나누어지고, 그렇게 나누는 만큼 그 무게는 가벼워질 것이다. 받는 사람과 주는 사람 모두에게 행복을 선사할 수 있다는 점이 기부가 가진 가장 커다란 덕목이기 때문이다.

나눔과 기부 문화는 자원봉사와 함께 한 나라의 문화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이다. 어려운 처지의 누군가를 작게나마 도움으로써 뿌듯함을 얻는 일은 분명 자신을 따뜻하게 해줄 것이다.

참고자료: Le coeur americain : eloge du don. 저자 Guy Sorman

박재준 공유경제신문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