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문화인류학] 기부의 시간성

기사입력:2020-09-07 11:00:00
공유경제신문 박재준 기자 기부 행위인 친구가 보내는 선물에는 곧바로 답례가 따르지 않는다. 선물을 받고 난 후 시간이 흐른 뒤에 서서히 답례의 과정이 따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선물을 받은 후, 시간이 지난 뒤에 답례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친구에 대한 우정의 표현으로 여겨지고 있다. 기부는 기부를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상호 신뢰를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답례에는 적당한 간격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 이다.

모스가 주장한 교환으로서 기부의 시간의 특징을 살펴보면 기부에 대한 답례는 무한히 지연되어서도 안 되고, 또한 그 답례가 즉각적으로 이뤄져서도 안된다. 수혜자는 기부에 대한 답례는 적절한 타이밍을 잡아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사진=Clipart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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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리다는 순수한 기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기부를 받은 자가 되갚거나, 변제하거나, 보상하거나, 책임을 벗거나, 계약을 생성하거나, 어떤 계약에 의한 빚을 절대로 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데리다의 주장처럼 답례가 없는 순수한 기부가 되려면 기부라는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이러한 순수 기부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데리다의 기부는 ‘순수한 기부’와 ‘경제적 교환’이라는두 체계의 모순 속에서 함께 병존한다.

반면, 부르디외는 기부 가능성의 조건이 상호성의 규칙 자체가 아니라 시간적 지연이라고 보았다. 선물과 답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물물교환이나 계약은 그것이 이루어지는 바로 그 순간에 전제로 하는 행동의 계산성과 예견성을 담보하는 법적행위라고 주장했다. 이 경우는 빚의 상환에 의해 보장되는 은행 대출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본 것이다. 부르디외는 기부와 답례사이의 시간적인 지연은 증여자와 수혜자 사이의 신용이라는 새로운 교환의 조건을 창출하며 선물교환을 도적적 윤리성의 관계, 이른바 ‘상호신뢰의 경제’(economy of the good-faith)로 전환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부르디외의 주장처럼 기업들은 기부 행위를 통해 기업과 수혜자 또는 소비자 사이에 신용이라는 새로운 교환조건을 만들어 ‘상호 신뢰의 경제’를 구축하 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기부의 시간성 측면에서 볼 때, 기업의 기부는 친구의 선물이나 조의금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지만 큰 맥락에서는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즉 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으로서 기부 활동을 할 경우, 기부를 받은 수혜자가 소비자일 경우 해당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답례)할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의 기부를 직접 받지는 않더라도 제3자의 입장에서 기업의 기부행위를 바라 보는 잠재적 소비자 역시 해당 기업에 대한 호감도가 커지고 심정적인 답례에 나설 가능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박재준 공유경제신문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