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산책] 폴라니 담론의 실험과 지속

기사입력:2019-04-17 12:51:00
구호대상 극빈자 문제와 유토피아

폴라니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의 제9장에 ‘구호대상 극빈자 문제와 유토피아’라는 소제목을 달고 극빈자 문제를 통한 사회적 경제의 태동을 알렸다. 그에 따르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면서“교역과 생산은 엄청나게 증가했으나, 그와 함께 인간 생활의 비참상이 엄청나게 늘어나는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비정상적이며 기묘한 시기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였다.

초기에는 집단적인 자력 구제의 원칙을 실천했던 퀘이커 교도들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 퀘이커 교도였던 로슨(Lawson)은 빈민문제와 관련하여 영국에서 걸인을 없애자는 의회에 대한 호소문(Appeal to the Parliament concerning the Poor that there be no beggar in England) 을 출간하였고,‘직업 알선 소(Labor Exchange)' 설립을 제안했으며, 그 10년 전에는 헨리 로빈슨(Henry Robinson)이‘구인구직 중개소(Office of Addresses and Encounters)'를 제안한바 있었다.

이러한 퀘이커 철학은 존 벨러스(John Bellers)로 이어진다. 폴라니는 그를 "미래에 나타날 사회사상을 미리 예견한 선각자라고 표현하였는데, 그는 1696년‘근면 협회(Colleges of Industry)’의 설립을 제안하 였다. 이는 이전의 직업 알선소 개념이 아닌 “노동자들 끼리 서로의 노동의 생산물을 교환하면 고용주가 필요 없다”는 생각을 내포 하고 있었다.
‘빈민들의 노동이야말로 부가 창출되는 금광’이라면, 빈민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그 부를 이용함으로써 자신을 부양하고, 심지어 얼마간의 잉여 까지 남기는 것이 왜 불가능하겠는가?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들을 하나의 협회(College) 또는 법인(corporation)으로 조직하여 자신들의 노력과 노동을 하나로 합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뿐이다.

이러한 존 벨러스의 생각은 다시 노동 부문에 있어 이중운동의 발현이기도한 오언(R. Owen)의 ‘협동 조합촌(Village of Union)'의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된다.

오언(R. Owen)의 실험과 오언주의(主義)

제레미 리프킨은 공공정책의 운용에 있어서 제1부문인 시장과 제2부문인 정부의 기능 이외에 사회 자본을 형성하고 시장과 교역을 가능하게 만드는 문화기구와 예술집단, 그리고 비정부 조직들을“사회적 신뢰의 샘물”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인류 문명사에서 문화가 줄곧 시장보다 우위에 있어서 상업 영역보다 먼저 생성되었고 이렇게 공동체를 통한 사회적 신뢰와 자본이 축적된 후에야 상업과 교역이 시작되었다고 설명하며 경제는 문화 영역에서 파생되어왔다고 주장하였다. 문화는 인간들 사이에 합의된 행동 기준을 낳는 원천이었기 때문에 시장은 중심 개념이 아닌 부수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업이 문화예술 영역을 삼켜버리고 상업적 관계를 낳는 기본적인 사회적 토대가 허물어지기 시작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폴라니의 실체경제와 형식경제의 담론과 매우 유사한 양상을 보인다.

윌리엄 F. 화이트 역시 그의 저서 몬드라곤에서 배우자 에서 지금까지의 경제조직과 경영에 관한 논의는“생산수단을 개인이 소유하고 통제하느냐, 아니면 국가가 소유하고 통제하느냐 하는 두 가지 방향에 국한된 형태”였다고 말하며, 이것을 일종의“지식의 감옥”이라고 표현하였다. 이러한 논쟁을 벌이는 두 당사자는 항상 자신의 논리상의 약점은 최소화하고, 상대방의 논리적 결함에는 최대한의 비판을 가해왔다고 설명하며, 그러나 결론적으로 이두 세력의 공통적인 논리적 결함은“경제활동을 조직하고 통제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노선만 존재한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화이트의 주장처럼 경제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위의 단 두가지 노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제 3의 방법과 방안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고 여러 사례와 경험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사회적 경제에 대한 인식의 배경이 되었다.

분야는 다르지만 도시계획 분야의 전문가인 플로리다의 창조계급 이론에는 공동체와 지역,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 부각되고 있는 협동조합의 주요 요소와 방식측면에서 일정 부분 일치하고 있다. 플로리다는 창조계급을 논하며 인적자원의 중요성을 역설하였으며 이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인간적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 다. 그리고 창조적인 경제와 창조적 사회구조를 구성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에 대해 설명하며 현실적으로는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요소이지만“모든 형태의 창조성을 수용하는 협력적 사회 환경”이야말로 창조적인 생태계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오늘날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갈 인적자원으로 부상하고 있는 창조적 인재와 창조성의 핵심 요소는 사회적 경제 개념의 협동조합 핵심 요소와 많은 부분에서 일치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우연이 아니며 시대의 변화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과 패러다임이 존재해 왔듯이 오늘날 인류가 처한 상황의 사회·문화·경제적인 시대적 요구의 반영인 것이다.

이렇듯 오늘날 시대적 요구의 반영으로 떠오르고 있는 사회적 경제 개념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존 벨러스의 생각으로부터 오언(R. Owen)의 협동 조합촌(Village of Union)의 아이디어로 이어지게 되었다. 오언은 당시의 기계 시스템에 투입되는‘노동력으로서의 인간’에 대한 참상에 회의를 느끼게 된다. 사회구조는 파괴되었으며 거기에서“노동이라는 요소만 뽑아내는 행태”는 인간을 그저“일하고 돈만 버는 문화적 불구 상태”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스피넘랜드 법으로 이미 겪은바 있던 소위‘기아의 칼날’은 인간에게서 노동이라는 요소만을 뽑아내기에 충분히 위력적이었으며 효율적이었다. 오언은 (뒤르케임의 표현으로) 이러한 아노 미적 상황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엄함을 지키면서 노동할 수 있을지에 대한 모색을 쉬지 않았다. 이러한 오언주의(主義)는 정치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노동계급을 배경으로 한 운동도 아니었다.

다만 그는‘총체로서의 인간’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처럼 오언주의의 특색은 인간과 노동에 대해 사회적인 접근을 취했다는 점이다. 폴라니는 이를 두고 오언주의는“사 회를 경제 영역과 정치 영역으로 분리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고 말하며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행동도 따로 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오언이 뉴래너크 공장을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면서 지켰던 요소는 오늘날에 이어진 사회적 경제 개념의 협동조합 방식과 매우 유사하다.

당시 이 공장은 당시의 유사한 업종의 임금 수준보다 상당히 낮은 임금을 지급했음에도 불과하고 뛰어난 노동의 조직화와 노동자들에게 제공되는 풍족한 복리후생의 혜택에 대한 만족도로 인해 짧은 시간에 높은 노동 생산성을 거둘 수 있었다.
뉴래너크는 인간의 형상을 빼앗기지 않고도 영리적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는 불가능의 위업을 성취할 미래의 꿈의 장소로 여겨져서 전 유럽에서 (심지어 미국에서도)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훗날 여러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폴라니가 오언의 천재성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에‘사회적인 것(the social)'의 개념을 추출해내어 오늘날 사회적 경제 개념으로 이어지도록 했던 오언의 실험과 경험이 대단히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은 부인할 수없다. 특히 오언주의는 오늘날 여러 분야에서 공통된 문제로 제기되고 있는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기능도 포괄하고 있다.

민지연 문화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