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9일 청와대에서 열린 중동 상황 관련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최근 과도하게 인상된 석유 제품에 대해 최고가격 제도를 신속하게 도입하고 과감하게 시행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이란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고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이 가파르게 뛰자 정부가 시장 개입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정부는 주유소 판매가가 아니라 정유사 공급가를 직접 통제하는 방식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몇주간의 싱가포르 현물 시장 가격 평균에 일정 마진을 더해서 정유사가 팔 수 있는 최고가를 정하는 방안이 유력하다”고 밝혔다. 국제 시세를 일부 반영하되 과도한 이윤을 제한해 가격 상승 출발점부터 눌러보겠다는 계산이다.
산업통상자원부도 시행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주 내 시행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며 “구체적인 내용은 준비를 마치는 대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석유 최고가격제가 실제로 시행되면 1997년 유가 자유화 이후 약 30년 만에 정부가 석유 가격 통제에 다시 직접 나서는 셈이다.
다만 정부 내부에서도 제도의 미세 조정 필요성은 인식하고 있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기본적으로는 2주 주기로 설계하려고 한다”며 “첫 번째 최고가격은 지금 시중에서 소비자가 맞닥뜨리는 가격보다는 낮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주 간격으로 최고가격을 조정하면서 유류세 인하 등을 통해 가격 출렁임을 막는 완충 조치 등을 고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가격을 행정으로 누르는 순간 시장 왜곡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정유사 입장에선 국제 가격과 환율이 뛰는데 국내 판매가격이 상한에 묶이면 수익성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다. 정부는 법에 따라 손실 보전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손실 산정 기준과 보전 범위, 재원 부담을 둘러싼 논란은 피하기 어렵다. 결국 가격을 억누른 대가를 재정으로 메우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공급 차질 우려도 적지 않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매점매석 고시를 병행해 정유사가 생산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국내 시장에 공급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가격 상한제를 피해 물량을 쌓아두거나 수출로 돌리는 행위를 막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기업의 재고 운용과 판매 전략까지 행정 통제 대상으로 묶을 경우 장기적으로 공급 유인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특히 최고가격제가 단기 처방에 그칠 가능성을 우려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석유 최고가격제는 정유사가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를 만들어 국내 물량을 해외로 돌리는 등 공급망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며 “손실 보전에 투입되는 세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나 형평성 논란도 예상되는 만큼, 가격을 억지로 막기보다는 유류세 인하나 에너지 절약 유도 등 보다 현명하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의 고민도 결국 같은 지점에 닿아 있다. 김 실장은 국제에너지기구 기준 비축유는 208일분이지만 국내 석유화학 산업 비중 등을 고려하면 실질 가용 물량은 약 4개월분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는 단순한 가격 통제보다 공급 안정과 수요 관리가 더 본질적인 과제라는 뜻으로 읽힌다.
결국 이번 조치는 치솟는 기름값을 잡겠다는 강한 메시지라는 점에선 분명하다. 그러나 정책 효과가 소비자 체감가 인하로 곧바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가격 상한, 손실 보전, 물량 통제를 한꺼번에 묶은 방식은 단기 충격을 완화할 수 있어도 시장 기능을 흔들고 세금 부담을 키울 수 있다. 최고가격제가 급한 불을 끄는 임시방편에 그칠지, 더 큰 부작용의 출발점이 될지는 시행 설계와 출구 전략에 달려 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