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 미래학자 제러미 리프킨은 ‘노동의 종말’, ‘소유의 종말’에서 이미 산업자본주의의 균열을 예고한 바 있다. 이번 책에서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자유시장 경쟁이 기술 혁신을 밀어붙인 끝에 재화와 서비스를 한 단위 더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 곧 한계비용이 거의 제로에 접근하고 있고, 그 결과 이윤을 전제로 작동해 온 자본주의 기업의 존립 근거가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시장이 스스로의 성공 때문에 스스로를 잠식하는 역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리프킨이 내세우는 핵심 개념은 ‘협력적 공유사회’다. 그는 시장의 교환가치가 점차 공유의 접속가치로 대체되고 있다고 본다. 음악, 영상, 지식, 뉴스 같은 정보 상품에서 먼저 시작된 변화가 이제 에너지, 물류, 제조, 주거로 번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유튜브, 위키피디아, 소셜미디어, 무료 전자책, 온라인 강의 플랫폼은 이미 전통 산업 질서를 흔들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물인터넷과 3D 프린팅, 재생에너지, 플랫폼 기반 공유 서비스가 물리적 경제까지 뒤흔들 수 있다는 전망이 이 책의 중심축이다.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물인터넷에 대한 리프킨의 판단이다. 그는 3차 산업혁명의 핵심 인프라를 커뮤니케이션 인터넷, 에너지 인터넷, 물류 인터넷이 결합한 형태로 규정한다. 수십억 개의 센서와 데이터, 예측 알고리즘이 결합하면 생산과 유통의 비효율이 줄고, 남는 전기와 자원, 설비와 공간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과거 전기가 산업사회를 재편했다면, 오늘의 사물인터넷은 그에 맞먹는 파괴력으로 경제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주장이다.
공유경제에 대한 해석도 분명하다. 카셰어링, 에어비앤비, 카우치서핑 같은 모델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소유에서 접근으로 이동하는 구조 변화의 신호라는 것이다. 차량, 집, 물건을 반드시 소유하지 않아도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확산할수록 시장에서 새 상품이 덜 팔리고, 그만큼 자원 투입과 온실가스 배출도 줄어든다. 리프킨은 이를 생태적 지속 가능성과 경제 민주화가 만나는 지점으로 읽는다. 기술 혁신이 곧바로 공공성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기존의 독점적 산업질서를 약화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은 설득력이 있다.
이 책의 미덕은 기술 예찬에만 머물지 않는 데 있다. 리프킨은 거대한 경제 혁명은 결국 인프라 혁명이라고 강조한다. 사물인터넷 기반 경제로 넘어가려면 공공과 민간의 대규모 투자, 제도 정비, 역할 재조정이 뒤따라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짚는다. 기업, 정부, 비영리 부문이 모두 기존의 위치를 바꿔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생산성 둔화와 일자리 위기, 환경 악화가 장기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미래는 기술이 자동으로 가져다주는 선물이 아니라 사회가 선택하고 설계해야 할 결과물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 책은 강한 낙관의 언어로 쓰였다. 공유가 확산한다고 해서 곧장 불평등이 완화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실제 플랫폼 경제는 독점, 감시, 데이터 권력 집중이라는 새로운 문제를 낳기도 했다. 공유경제가 공동체의 복원보다 플랫폼 기업의 수익 모델로 변질한 사례도 적지 않다. 사물인터넷 역시 효율의 이름으로 인간을 더 촘촘히 통제하는 장치가 될 위험이 있다. 리프킨의 전망이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 해답이 현실에서 그대로 구현됐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그럼에도 ‘한계비용 제로 사회’가 갖는 힘은 분명하다. 이 책은 기술 현장의 변화와 경제사, 문명사적 시야를 한데 묶어 오늘의 자본주의를 다시 보게 만든다. 한계비용이 떨어질수록 시장이 확대된다는 교과서적 상식이, 어느 순간 시장 자체의 토대를 허물 수 있다는 통찰은 지금 읽어도 도발적이다. 생산, 소비, 유통, 소유, 노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겨 온 독자라면 이 책 앞에서 적어도 한 번은 질문을 다시 던지게 된다.
결국 ‘한계비용 제로 사회’는 미래를 예언한 책이라기보다 미래를 둘러싼 싸움의 의제를 선점한 책에 가깝다. 자본주의 이후를 말하는 그의 문장이 과장으로 읽히는 순간에도, 그 과장이 현실의 변화를 설명하는 데 뜻밖의 힘을 발휘하는 대목이 있다. 기술의 진보가 누구의 이익으로 귀결될 것인지, 공유가 시장의 보완재에 그칠지 대안 질서의 씨앗이 될지, 이제 판단은 독자와 사회의 몫이다. 리프킨은 그 논쟁의 출발점으로 여전히 충분히 읽힐 만한 책을 내놓았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