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보조금도 디지털화폐로 받는다···재정집행 혁신 시험대 오른 예금토큰

전기차 충전시설 보조사업에 첫 적용···부정수급 차단·정산 효율화 기대
사용처 통제·개인정보 보호·디지털 소외 숙제···확산 전 제도 완성도 높여야
기사입력:2026-03-19 18:03:22
사진=CB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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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안혜린 기자] 정부가 국고보조금 지급 체계에 디지털화폐를 접목하는 실험에 나서면서 재정집행 방식의 대전환 가능성이 주목받고 있다. 보조금의 흐름을 보다 촘촘히 관리해 부정수급을 막고 정산 효율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다만 사용 통제 범위와 개인정보 보호, 디지털 접근성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제도 확산 과정에서 적잖은 논란도 예상된다.

19일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와 한국은행은 기관용 디지털화폐와 예금토큰을 활용한 국고보조금 집행 시범사업을 추진한다. 적용 대상은 전기차 충전시설 구축 사업 중 중속 충전시설 분야다.

사업대상자가 선정되면 보조금을 디지털 방식의 예금토큰으로 지급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집행·정산하는 구조다. 재정당국은 이를 통해 국고보조금 지급 경로를 정밀하게 관리하고 정산 기간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책의 가장 큰 강점은 재정집행의 목적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다. 기존 보조금은 지급 이후 실제 사용처를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디지털화폐 기반 지급은 자금 흐름이 기록으로 남는 만큼 정책 목적에 맞는 집행 여부를 상대적으로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지급부터 사용, 정산까지 데이터가 연결되면 집행기관의 관리 비용을 줄이고 재정 누수를 막는 효과도 기대된다.

정산 절차를 단축할 가능성도 크다. 보조금 사업은 통상 지급 이후 증빙 확인과 사후 정산 과정에서 적지 않은 행정비용이 발생한다. 디지털 방식은 거래 기록이 자동 축적되는 만큼 증빙과 검증 절차를 간소화할 여지가 크다.

집행기관으로선 사후 관리 부담을 덜 수 있고, 사업 수행기관으로선 자금 운용의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재정지출의 디지털 전환이 본격화하면 국고관리 체계 전반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시범사업이 전기차 충전 인프라 보조사업에 우선 적용된 점도 눈에 띈다. 사업 목적이 비교적 분명하고 집행 대상과 사용처를 구조화하기 쉬운 분야여서다.

정책 효과를 검증하기에 적합한 영역에서 먼저 운영 경험을 쌓은 뒤 다른 국고보조사업으로 확대하겠다는 포석으로 읽힌다. 초기 리스크를 통제하면서 제도 안착 가능성을 시험하겠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문제는 효율성만으로 제도의 성패를 가를 수 없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부각되는 변수는 사용 통제의 범위다. 디지털화폐 기반 보조금은 지정된 가맹점이나 용도에서만 사용하도록 설계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정책 목적 외 사용을 막는 데는 유리하다.

그러나 수급자의 선택권을 과도하게 좁히면 제도 수용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생활 밀착형 지원으로 확대될 경우 행정이 설계한 목적과 현실 수요 사이의 간극이 더 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개인정보 보호도 핵심 쟁점이다. 디지털 지급 시스템은 투명성을 높이는 대신 거래 데이터가 대규모로 축적된다는 특성이 두드러진다. 어느 기관이 어디까지 열람할 수 있는지, 보관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정책 집행 외 목적으로 활용될 가능성은 없는지에 대한 기준이 분명해야 한다.

제도 설계가 허술하면 재정 투명성 강화라는 명분이 자칫 과도한 행정 추적으로 비칠 수 있다. 시장과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기술 도입 못지않게 데이터 거버넌스 체계를 정교하게 짜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디지털 접근성 문제도 간과하기 어렵다. 스마트폰 앱 설치와 본인 인증, 전자결제 절차에 익숙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는 새로운 지급 방식이 또 다른 장벽이 될 수 있다. 국고보조금은 단순한 편의 서비스가 아니라 공적 이전지출이라는 점에서 접근성 저하는 곧 실질적인 수혜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

모바일 중심 구조만으로는 한계가 뚜렷하다. 실물카드나 오프라인 지원 창구, 대면 안내 체계 같은 보완 장치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기술 안정성도 점검이 필요하다. 시스템 장애나 결제 오류가 발생하면 보조금 집행 자체가 지연될 수 있다. 가맹점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으면 현장 혼선도 커질 수밖에 없다.

디지털 장부의 신뢰성과 실제 결제 현장의 편의성은 별개의 문제다.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기술 구현보다 운영 안정성과 사용자 경험, 민원 대응 체계를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국고보조금 디지털화폐 지급은 재정혁신의 가능성과 제도 리스크를 동시에 안은 정책 실험이라 할 만하다. 재정 누수를 줄이고 정산을 효율화하며 집행 책임성을 높이겠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다만 정책의 지속 가능성은 기술의 선진성보다 제도 설계의 균형감에 달려 있다. 시범사업 성과를 평가할 때도 정산 기간 단축이나 부정수급 차단 실적에 그칠 게 아니라 수급자 불편, 시스템 안정성, 가맹점 접근성, 개인정보 보호 수준까지 함께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의 한 디지털화폐 전문가는 “국고보조금의 디지털화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성공 여부는 기술보다 원칙에 달려 있다”며 “재정 효율을 높이겠다는 명분이 국민의 선택권과 접근성을 해치지 않도록 설계해야 하고, 데이터 수집과 활용도 최소 범위에서 엄격히 통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범사업은 디지털 전환의 속도를 과시하는 단계가 아니라 재정 혁신과 국민 신뢰를 함께 입증해야 하는 시험대”라고 진단했다.

안혜린 기자 rin796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