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이동 막힌 한국···소득보다 깊은 자산 대물림

[기획] 한은 보고서, 소득 RRS 0.25·자산 RRS 0.38···최근 세대일수록 대물림 심화 ①
비수도권 출생층서 고착 더 뚜렷···지역 격차가 계층 격차로 이어져
기사입력:2026-03-24 13:03:30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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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한국 사회의 계층이동 사다리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 세대에 이전되는 정도는 소득보다 자산에서 더 강했고, 최근 세대로 올수록 대물림도 심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역 간 격차 확대가 이런 흐름을 더 굳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발표한 ‘지역간 인구 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에 따르면 부모 소득순위가 자녀 소득순위에 미치는 정도를 보여주는 소득 RRS는 0.25로 추정됐다. 부모 소득순위가 10계단 오르면 자녀는 평균 2.5계단 오르는 셈이다. 자산 대물림은 더 강했다. 자산 RRS는 0.38로, 소득보다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RRS는 부모의 경제적 위치가 자녀에게 얼마나 이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수치가 높을수록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자녀 세대의 순위를 더 강하게 결정한다는 뜻이다. 자산 RRS가 소득 RRS를 웃돈 것은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가 임금 격차를 넘어 주택과 금융자산, 상속과 증여 등 축적 자산을 중심으로 굳어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 세대로 갈수록 이런 흐름은 더 뚜렷해졌다. 보고서는 출생 코호트별 분석에서 소득 RRS가 1971∼1980년생 자녀 0.11에서 1981∼1990년생 자녀 0.32로 상승했다고 제시했다. 자산 RRS도 같은 기간 0.28에서 0.42로 높아졌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 세대의 경제력이 자녀 세대의 경제적 위치를 더 크게 좌우하게 됐다는 의미다.

이처럼 자산 대물림이 소득 대물림보다 강하게 나타난 것은 계층이동 경로가 그만큼 좁아졌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소득은 경기나 고용 여건, 개인의 경력 형성 등에 따라 변동할 여지가 있다.

반면 자산은 한 번 격차가 벌어지면 축적 효과가 이어진다. 주거 수준과 교육 환경, 금융 접근성, 위험 감수 여력까지 자산 규모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부모 세대의 자산 차이가 자녀 세대의 출발선 차이로 이어지고, 그 격차가 다시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구조가 형성되는 셈이다.

보고서는 이런 대물림 심화의 배경으로 지역 격차 확대를 지목했다. 분석 결과 30∼59세 조사대상자 가운데 출생지와 현재 거주지가 같은 경우는 광역시·도 기준 48.6%였다. 광역권 기준으로는 68.1%에 달했다. 성인 인구의 절반가량은 태어난 시·도에 그대로 머물고, 10명 중 7명가량은 출생한 광역권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처럼 이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가 벌어지면 지역 차이는 곧 개인의 경제력 차이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보고서는 부모와 자녀의 거주지가 같은 경우 수도권 출생 자녀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소득과 자산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지역 격차가 개인 격차로, 다시 세대 격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는 확대되는 추세다. 보고서에 따르면 1인당 본원소득은 수도권이 2005년 1810만원에서 2023년 2710만원으로 늘어난 반면 비수도권은 같은 기간 1490만원에서 2150만원으로 증가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2005년 320만원에서 2023년 550만원으로 커졌다. 임금과 사업소득, 재산소득 전반에서 격차가 확대된 결과다.

자산 격차는 더 직접적이다. 가구 자산의 약 70%를 차지하는 주택의 경우 서울 아파트 실질 매매가격은 2005년보다 큰 폭으로 올랐지만, 비수도권은 상대적으로 부진한 흐름을 보였다. 상업용 부동산 역시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수익성과 공실률 차이가 이어졌다. 지역별 자산 형성 기회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뜻이다.

눈에 띄는 점은 최근 대물림 심화 현상이 지역별로도 다르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보고서는 출생지역별로 소득 및 자산 RRS를 추정한 결과 수도권보다 비수도권 출생 자녀에게서 최근 세대의 대물림 심화가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지역 문제가 단순한 생활 여건 차이를 넘어 계층 고착의 문제로 번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여전히 능력주의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지 되묻게 한다. 부모의 자산과 거주지가 자녀의 교육과 취업, 이주 가능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경쟁의 출발선은 이미 기울어져 있다고 봐야 한다. 계층 고착이 심해질수록 개인의 노력만으로 넘기 어려운 구조적 장벽도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정민수 한국은행 조사국 지역경제조사팀장은 “소득보다 자산에서 세대 간 대물림 정도가 더 크게 나타났고, 최근 세대로 올수록 그 경향이 강해졌다”며 “지역 간 격차를 완화하고 비수도권 청년층의 교육·일자리 기회를 넓히는 정책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회에서는 지역 이동이 실제 계층상승의 통로로 작동했는지, 또 그 기회가 누구에게 열려 있고 누구에게는 닫혀 있었는지 살펴본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