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는 지난 9일 신용평가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3차 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소상공인 특화 신용평가체계(SCB) 도입방안’을 발표했다. SCB는 기존 사업자 신용등급(CB)에 미래 성장 가능성을 평가한 성장등급(S등급·Scale-up)을 결합한 AI 기반 평가체계다. 대표자 개인의 과거 연체 이력과 금융거래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사업자 데이터를 중심으로 입체적으로 평가하겠다는 뜻이다.
이번 개편은 소상공인 금융의 고질적 한계를 겨냥했다. 금융위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소상공인은 약 790만개로 전체 사업체의 95%, 종사자는 1090만명으로 전체 고용인구의 46%를 차지한다. 하지만 개인사업자 대출의 약 90%는 여전히 담보·보증부 대출에 몰려 있고, 신용대출 비중은 9.6%에 그친다. 대표자 개인 신용정보 위주 평가가 지속되면서 실제 사업성과와 신용평가 사이의 괴리가 누적됐다는 게 당국 판단이다.
SCB는 업종 특성에 맞춰 도·소매업, 숙박·음식점업, 기타 서비스업, 기술업 등 4개 세그먼트로 평가모델을 나눈다. 성장등급은 AI 계량모형과 비계량모형을 결합해 산출한다. 계량모형은 매출 증가율, 업력, 근로자 수, 동일 업종 대비 매출 수준, 상권 내 지위, 사업 지속성, 온라인 플랫폼 기반 활동성 등을 반영해 성장 확률을 예측한다. 비계량모형은 사업장 접근성, 상권 특성, 업종 트렌드 적합성, 특허·인증 보유, 온라인 인지도 등 정성 요소를 가점 방식으로 반영한다.
성장성이 높다고 판정된 사업자는 기존 CB등급보다 상향된 등급에 준하는 금융 혜택을 받게 된다. 금융위와 한국신용정보원은 특히 중등급 CB 구간의 일부 사업자에게 제도권 금융 접근성을 높이는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상위 성장등급 사업자를 상향효과 대상으로 시나리오 테스트한 결과, 중등급 CB 구간 내 약 10% 사업자가 혜택 대상이 될 수 있었고, 등급 조정 전후 부실률 역전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리스크 변별력도 유지됐다는 게 당국 설명이다.
시범 운영은 올해 하반기부터 시작된다. 기업은행, 농협은행, 하나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KB국민은행, 제주은행 등 7개 은행이 약 1조8천억원 규모 소상공인 대출 상품 심사에 SCB를 우선 활용한다. 금융위는 2026년 하반기부터 2027년 상반기까지는 한국신용정보원이 개발한 공통 모형을 활용해 시범 운영하고, 2027년 하반기부터는 CB사와 금융회사별 차별화 모형 개발과 활용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2028년부터는 금융권의 SCB 활용 실적을 점검하고 인센티브 구조를 운영해 전 금융권 확산을 유도할 계획이다.
정책 효과도 적지 않을 것으로 금융위는 기대했다. SCB가 금융권에 안착하면 매년 약 70만명의 소상공인에게 연간 10조5천억원 규모 신규 대출 공급 효과와 약 845억원의 금리 인하 효과가 가능하다는 추산이다. 중·하위 신용등급 소상공인 중 약 32만명은 신용등급 상향 효과를 통해 연 5조4천억원 규모의 신규·추가 대출과 697억원의 금리 인하 효과를, 기존 고신용 소상공인 중 약 38만명은 한도·금리 우대를 통해 5조1천억원 규모의 추가 자금 공급과 148억원의 금리 절감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계산이다.
금융위는 모형 도입과 함께 신용정보원 내에 소상공인 통합정보센터(SDB)도 구축한다. 금융정보 외에 사업장 개요, 재무, 고용정보 등 다양한 비금융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관리하는 인프라다. 이를 바탕으로 금융권 신용평가와 통계분석을 지원하고, 소상공인 특화 상품 개발, 맞춤형 금융컨설팅, 성장등급 평가결과에 대한 주요 평가요인 설명 서비스까지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SCB가 일회성 평가모형이 아니라 데이터 기반 금융 인프라로 확장되는 셈이다.
정책이 실제 현장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장치도 함께 추진한다. 금융위는 금융회사가 소상공인 대출 심사에 SCB를 활용할 때 면책제도를 도입하고, 성과평가에 반영하는 등 유인체계를 마련할 예정이다. 아울러 신용정보법령 관련 규정과 업권별 여신심사 가이드라인 개정도 추진한다. 향후 은행권의 SCB 활용 실적은 사회공헌 실적 공표 때 함께 공개하고, 포용금융 종합평가에도 반영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단순히 새 평가모형을 내놓는 데 그치지 않고, 금융회사의 실제 활용을 제도적으로 밀어주겠다는 의미다.
다만 과제도 남아 있다. 온라인 플랫폼 정보나 상권 트렌드, 인지도 같은 비금융·비정형 데이터는 업종별 편차가 크고 경기 변동에도 민감해 신뢰성과 설명 가능성 확보가 중요하다. 금융위도 시범운영 결과를 토대로 성장성과 부실률 예측에 적합성이 떨어지는 지표는 제외하고, 적합성이 높은 지표는 반영률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결국 SCB의 성패는 AI 도입 자체보다 변수 선정과 사후 검증, 은행권 수용성에 달려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이날 “이제 금융은 담보가 아니라 데이터로, 과거가 아니라 미래 성장성으로 평가하겠다”며 “단순한 평가모형의 개선이 아니라 자금이 흐르는 방향을 바꾸는 금융 구조의 변화”라고 말했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