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100번째 회의를 열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를 공식 심사하고 지원한 뒤 피해자로 인정된 사례는 누적 3만8503건이 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사들인 피해주택은 8357호까지 늘었다. 주거·금융·법률 지원 실적도 6만3568건으로 집계됐다. 숫자만 보면 전세사기 피해 지원은 궤도에 오른 듯 보인다.
그러나 피해자의 현실은 숫자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에게 하루는 이자와 연체 위험이 쌓이는 시간이다. 경매 통지서 한 장은 생계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정부가 지원 건수를 발표할 때 피해자는 돈을 언제 돌려받을 수 있는지 묻는다. 정부가 매입 속도를 말할 때 피해자는 지금 사는 집에서 계속 지낼 수 있는지부터 따진다.
전세사기 피해지원위원회가 지금까지 처리한 6만3124건 가운데 가결은 3만8503건이다. 가결률은 61.0%다. 나머지는 부결 1만4028건, 적용 제외 6235건, 이의신청 기각 4358건이다. 피해를 호소한 신청자 10명 중 4명 가까이는 제도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는 뜻이다.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부결 사유다. 부결된 1만4028건 중 9550건은 ‘보증금 미반환 의도 미충족’이었다. 전체 부결의 68.08%다. 보증금을 받지 못한 사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기다. 임대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을 의도가 있었는지, 사기성이 있었는지를 요건에 맞게 보여야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기준은 필요하다. 전세사기와 일반 임대차 분쟁을 구분하지 않으면 제도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 한정된 재정과 공공 자원을 쓰는 만큼 허위 신청도 걸러내야 한다. 모든 보증금 미반환 사건을 전세사기로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그 기준이 피해자에게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임대인의 자금 사정, 세금 체납, 선순위 권리, 다수 피해 발생 여부는 계약 당시 임차인이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사고가 난 뒤에도 개인이 자료를 모으고 고의성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피해자가 가장 취약한 순간에 가장 어려운 입증 책임을 떠안는 구조라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피해의 성격도 분명하다. 피해자의 76.02%는 40세 미만이다. 30대가 절반을 넘고 20대가 그 뒤를 잇는다. 보증금 3억원 이하가 97.6%다. 다세대주택, 오피스텔, 다가구주택 피해가 가장 많다. 전세사기는 일부 투자자의 실패가 아니다. 청년과 서민의 주거 기반을 무너뜨린 사회적 재난에 가깝다.
정부 지원이 성과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제도 초기와 비교하면 지원망은 넓어졌다. 긴급 경·공매 유예, 경·공매 대행, 조세채권 안분, 대환대출, 공공임대 매입 요청, 법률지원이 마련됐다. LH 매입 실적도 빨라졌다. 2024년 90호에 그쳤던 매입 실적은 올해 1∼4월 월평균 840호까지 늘었다. 행정이 뒤늦게나마 현장을 따라잡으려는 움직임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원 건수가 늘었다고 피해 회복까지 이뤄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장기 분할상환은 연체를 막고 신용 추락을 늦출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가 떠안은 빚을 없애지는 않는다. 공공매입은 주거 불안을 덜 수 있다. 그러나 신청부터 실제 매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면 피해자의 주거 불안은 그만큼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번 발표에서 아쉬운 것도 이 지점이다. 피해자가 실제로 돌려받은 보증금이 얼마인지, 피해자 결정까지 평균 얼마나 걸렸는지, LH 매입 신청 뒤 실제 매입까지 몇 달이 걸렸는지는 드러나지 않았다. 공공임대 전환 뒤 계속 거주하는 피해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알 수 없다. 정부가 다음에 내놓아야 할 숫자는 바로 이런 지표다.
전세사기 대책은 이제 양에서 질로 넘어가야 한다. 몇 건을 심사했는지보다 얼마나 빨리 인정했는지가 중요하다. 몇 호를 매입했는지보다 피해자가 그 집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됐는지가 중요하다. 몇 건을 지원했는지보다 채무와 주거 불안이 얼마나 줄었는지가 중요하다.
정책의 언어는 차갑다. 가결, 부결, 적용 제외, 기각이라는 말 뒤에는 집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 전세대출 이자를 내며 다음 달을 걱정하는 청년이 있다. 보증금이 전 재산인 가족이 있다. 그래서 전세사기 지원은 단순한 행정 처리가 아니라 회복 절차여야 한다.
백승록 국토교통부 전세사기피해지원단 피해지원총괄과장은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위원회 심사와 피해주택 매입, 금융·법률 지원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피해자가 제도를 신속히 이용할 수 있도록 관계기관과 협의해 매입 절차를 단축하고 잔여채무 분할상환 안내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현장에서 힘을 얻으려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하다. 피해 인정 기준의 예측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임차인의 입증 부담도 줄여야 한다. 기관별로 흩어진 절차는 더 단순해져야 한다. 무엇보다 피해 회복률과 처리 기간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전세사기 피해는 숫자로 집계되지만, 피해자의 불안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 대책은 그 불안을 줄이는 데서 평가받아야 한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기자수첩] 전세사기 피해자에게 필요한 ‘회복의 속도’
기사입력:2026-05-11 12: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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