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 시대] 한국 토큰증권 시장, 조각투자 넘어 제도권 진입 ②

전자증권법·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분산원장 기반 발행·유통 근거 마련
음원저작권·부동산·미술품 중심 초기 시장···유동성·공시·수탁 인프라 과제
기사입력:2026-05-27 17:20:10
사진=토큰증권
사진=토큰증권
[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국내 토큰증권 시장이 부동산, 음원저작권, 미술품 등 조각투자 중심의 실험 단계를 넘어 제도권 시장으로 진입할 법적 기반을 마련했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공개한 BOK 이슈노트 ‘국내외 자산 토큰화 현황 및 향후 정책 과제’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올해 2월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으로 분산원장 기반 토큰증권을 발행·유통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동안 규제 샌드박스에 의존해 제한적으로 운영됐던 조각투자 시장이 제도권 편입을 앞둔 셈이다.

토큰증권은 부동산, 저작권, 미술품, 채권 등 자산에 대한 권리를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에 기록하고 토큰 형태로 발행·거래하는 증권이다. 국내 시장은 글로벌 시장과 달리 전통 금융상품보다 비정형적 실물자산을 쪼개 투자하는 조각투자에서 먼저 형성됐다.

한국은행이 개별 업체 공개 자료와 언론 보도 등을 토대로 파악한 국내 조각투자 누적 규모는 올해 1월 기준 약 6400억원이다. 기초자산별로는 음원저작권이 4200억원으로 65.2%를 차지했다. 미술품은 1097억원으로 17.0%, 부동산은 1027억원으로 16.0%였다.

음원저작권 비중이 큰 것은 상품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고 온라인 관리가 쉬운 데다 대중적 친숙도가 높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술품과 부동산도 고가 자산을 소액으로 나눠 투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각투자 시장의 주요 자산군으로 자리 잡았다.

다만 국내 조각투자 시장은 출발부터 제도적 한계를 안고 있었다. 토큰증권의 법적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9년 이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은 일부 사업자만 음원저작권, 부동산, 한우, 미술품 등 조각투자 상품을 한시적으로 발행하거나 유통할 수 있었다.

상품 구조도 제한적이었다. 국내 조각투자 상품은 주로 비금전신탁 수익증권과 투자계약증권 형태로 발행됐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은 부동산이나 음원저작권 등 비금전 자산에서 나오는 수익청구권을 신탁해 투자자에게 나눠주는 구조다. 투자계약증권은 다수 투자자가 미술품이나 한우 등 실물자산 사업에 함께 투자하고 손익을 배분받는 방식이다.

문제는 기존 자본시장법이 이런 상품의 발행과 유통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은 법적 근거가 없어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서만 허용됐다. 투자계약증권은 발행은 가능했지만, 유통 관련 규정이 미비해 다수 투자자 간 거래에 제약이 있었다.

이번 법 개정의 핵심은 분산원장의 법적 효력 인정이다. 개정 전자증권법은 분산원장을 기존 중앙집중식 전자증권 장부처럼 법적 효력을 갖는 공부로 인정했다. 이에 따라 분산원장에 기재된 토큰증권도 법적 안정성과 권리 추정력을 갖게 됐다.

기존에는 조각투자 거래 정보가 분산원장에 기록되더라도 같은 내용을 전자등록계좌부에 다시 올리는 ‘미러링’ 절차가 필요했다. 법 개정 이후에는 이중 기록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발행인이 자신이 발행한 토큰증권을 분산원장에 직접 등록할 수 있는 발행인 계좌관리기관 제도도 도입됐다.

자본시장법 개정도 의미가 크다. 투자계약증권의 발행뿐 아니라 유통이 가능해지면서 토큰증권의 장외거래 근거가 마련됐다. 다수 투자자는 일정 요건을 갖춘 장외거래중개업자를 통해 투자계약증권을 사고팔 수 있게 된다.

금융권도 제도 시행에 대비하고 있다. 증권사는 토큰증권 발행·유통 플랫폼 구축과 계좌관리기관 역할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은행권은 투자자 예치금 분리보관과 대금 정산 등 자금관리 기능을 중심으로 인프라를 준비하고 있다.

한국거래소와 넥스트레이드도 조각투자 장외거래소 운영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교보생명, 키움증권, 카카오페이증권 등과 KDX를 설립했다. 넥스트레이드는 신한투자증권, 하나증권, 뮤직카우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두 조직은 지난 2월 수익증권 장외거래중개업 예비인가 대상으로 선정됐다.

예탁결제원은 분산원장 시스템을 활용한 전자등록과 총량관리 테스트베드를 구축하고 있다. 코스콤은 정보기술 업체 등과 협력해 토큰증권 공동 플랫폼 개발을 추진 중이다.

그러나 제도권 진입이 곧 시장 활성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국내 시장은 아직 부동산, 음원저작권, 미술품 등 일부 비정형 자산에 집중돼 있다. 블랙록의 MMF 토큰이나 UBS의 디지털 채권처럼 전통 금융상품을 직접 토큰화한 사례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비금전신탁 수익증권의 법적 근거도 과제로 남아 있다. 부동산과 음원저작권 조각투자 상당수가 이 방식과 관련돼 있지만, 관련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법적 기반이 완비되지 않으면 시장 확장에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투자자 보호 장치도 중요하다. 비정형 자산은 가치평가가 어렵고 정보 비대칭이 크다. 기초자산의 실재성, 수익 배분 기준, 수탁 구조, 공시 방식, 권리 이전 절차가 명확하지 않으면 토큰증권은 혁신 상품이 아니라 불투명한 고위험 상품으로 전락할 수 있다.

박상훈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비전통금융분석팀 과장은 “국내 자산 토큰화 시장의 조기 안착을 위해서는 시장 수요가 확인된 비정형적 자산을 중심으로 토큰증권의 거래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유동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자산의 가치평가, 수탁, 공시 등의 인프라를 체계적으로 구축해 투자자의 신뢰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 토큰증권 시장은 이제 실험의 문턱을 넘어섰다. 남은 과제는 상품을 많이 내놓는 일이 아니다. 실제 거래가 이뤄지는 유동성, 투자자가 믿을 수 있는 공시, 권리를 보장하는 수탁과 결제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다. 제도권 진입 이후의 성패는 기술보다 시장 신뢰에 달려 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