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거래위원회 판단은 단순하지 않다. 벤츠코리아와 독일 본사가 EQE·EQS 일부 모델에 파라시스 배터리 셀이 탑재된 사실을 알고도 판매지침에서 이를 누락·은폐하고, 마치 CATL 배터리가 들어간 차량인 것처럼 영업 현장에 활용하게 했다는 게 이번 사안의 핵심이다. 공정위는 이를 소비자 기만으로 보고 시정명령과 공표명령, 과징금 112억3900만원을 부과했고 검찰 고발까지 결정했다. 그만큼 사안을 무겁게 본 것이다.
벤츠는 오랫동안 기술과 품질, 안전의 상징처럼 소비돼 왔다. 소비자도 비싼 값을 치르는 대신 그 이름이 보증하는 신뢰를 샀다. 그런데 정작 전기차에서 가장 민감한 부품인 배터리 셀 정보를 숨겼다면, 벤츠가 판 것은 자동차만이 아니라 착시였다고 봐야 한다. 소비자가 배터리 제조사를 물으면 사실을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에 따르면 판매지침에는 파라시스는 빠지고 CATL의 장점만 빼곡히 담겼다. 정보 제공이 아니라 유도였고, 설명이 아니라 설계된 오인이었다.
더 심각한 대목은 이 정보가 단순 사양표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배터리 셀은 주행거리와 성능, 안전성과 직결되는 핵심 부품이다. 전기차 화재에 대한 불안이 커진 시장에서 배터리 관련 정보는 구매 판단의 본질에 가깝다. 벤츠 내부에서도 판매지침 제작 목적에 배터리 불안 해소가 적시됐다면, 이 회사 역시 해당 정보의 민감성과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알고도 뺐다면 실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선택이었다면 책임도 더 무거워야 한다.
벤츠가 이번 사안을 두고 참고자료나 현장 혼선 정도로 축소하려 든다면 그 자체가 또 다른 오판이다. 공정위 설명대로라면 이 지침은 딜러 현장에 전파됐고 공식 교육자료로도 쓰였다. 딜러는 파라시스 탑재 사실을 모른 채 CATL 배터리가 들어간 것으로 설명했고, 소비자는 그 말을 믿고 차량을 샀다. 본사가 만든 프레임이 현장의 입이 됐고, 그 입을 통해 소비자 판단이 왜곡됐다. 제조사가 딜러를 방패 뒤에 세울 수 없다는 점도 이번 사건이 분명히 보여준다.
독일 본사 책임이 함께 거론된 점도 의미가 크다. 한국 법인만의 일탈이 아니라 본사가 사전 보고를 받고 보완 요청까지 받았으며, 해당 지침을 우수 사례로 평가했다는 조사 결과는 이 문제가 조직적이었다는 의심을 짙게 만든다. 한국 시장을 향해선 프리미엄 이미지를 팔고, 책임 앞에서는 법인 구조 뒤로 숨는 방식은 더는 통하지 않는다. 글로벌 브랜드일수록 글로벌 수준의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사건은 벤츠 한 회사의 일탈로만 끝낼 일이 아니다. 전기차 시대의 정보 비대칭이 어디까지 소비자를 위험하게 만들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이기 때문이다. 핵심 부품 정보가 제조사 재량에 맡겨진다면, 소비자는 광고와 설명 사이에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렵다. 브랜드가 말하는 ‘혁신’보다 먼저 검증돼야 할 것은 ‘투명성’이다. 안전과 직결된 부품 정보는 선택 공개가 아니라 의무 공개로 가야 한다. 판매 현장 설명 문구도 사후 점검이 아니라 사전 관리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벤츠는 지금이라도 변명보다 인정이 먼저다. 어떤 모델에 어떤 셀이 들어갔는지 명확히 공개하고, 기존 구매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며, 필요한 보상과 후속 조치에 나서야 한다. 프리미엄은 가격표가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이번 사안에서 벤츠가 보여준 태도는 프리미엄과 거리가 멀었다.
별 하나가 더 많은 차가 아니라, 거짓 하나가 없는 차를 소비자는 원한다. 벤츠가 정말 회복해야 할 것은 판매량이 아니라 신뢰다. 그 신뢰는 광고로 다시 살 수 없다. 사실을 숨긴 대가를 정직하게 치를 때만 겨우 복구의 출발선에 설 수 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