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SK 자사주 대규모 소각···美 빅테크 AI 투자 선회

삼성전자 상반기 16조원·SK 내년 1월 5조1천억원 소각 결정
알파벳·오라클·아마존 자사주 매입 축소···AI 투자 확대 자금 배분 바꿔
기사입력:2026-03-12 14:37:33
사진=삼성전자
사진=삼성전자
[공유경제신문 김승한 기자] 삼성전자와 SK가 대규모 자사주 소각에 나서며 주주환원 강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반면 미국 빅테크는 자사주 매입을 줄이고 인공지능(AI) 투자에 자금을 집중하고 있다. 주주가치 제고를 둘러싼 한국과 미국 대표 기업들의 전략이 뚜렷하게 갈리는 모습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사업보고서를 통해 2025년 말 기준 보유 자사주 1억543만주 가운데 약 82.5%인 8700만주를 올해 상반기 소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우선주를 포함한 소각 규모는 약 16조원이다.

이번 소각은 삼성전자가 앞서 발표한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의 연장선에 있다.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주가 저평가 국면을 돌파하고 주주환원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SK그룹 지주사인 SK도 이사회를 열고 보유 자사주 약 1798만주 가운데 80%인 약 1469만주를 내년 1월까지 소각하기로 했다. 금액으로는 약 5조1천억원 규모다. 남는 자사주는 인재 영입과 임직원 성과 보상 등에 활용할 방침이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 수를 줄여 주당 가치와 주당순이익(EPS)을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다. 배당 여력 개선 기대도 뒤따른다. 실제로 삼성전자와 SK의 소각 발표 뒤 시장은 두 회사는 물론 관련 지분을 가진 종목까지 수혜 가능성을 반영하며 주가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국내 자본시장에서 자사주 소각은 단순한 재무기법을 넘어 지배구조 개선과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시험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상법 개정 이후 소각 계획을 공개한 기업이 빠르게 늘어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기업이 사들인 주식을 계속 쥔 채 경영권 방어 수단처럼 활용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된 결과다.

반면 미국 빅테크는 다른 길을 택하고 있다. 알파벳과 오라클, 아마존 등은 지난해 자사주 매입 규모를 전년보다 줄였다. 메타도 자사주 매입 축소 기조를 보였고, 아마존은 최근 수년간 사실상 자사주 매입을 중단했다. 줄어든 자금은 AI 인프라와 데이터센터, 반도체, 클라우드 경쟁력 확보에 투입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주가 부양보다 장기 성장 동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생성형 AI 경쟁이 격화하면서 빅테크는 막대한 자본을 선제 투자에 쏟아붓고 있다. 주주환원을 줄이더라도 미래 수익 기반을 키우는 것이 결과적으로 기업가치와 주주이익을 더 크게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삼성전자도 대규모 투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연구개발(R&D) 투자액은 37조7천억원, 시설투자는 52조7천억원으로 각각 역대 최대 수준을 기록했다. HBM4 등 차세대 반도체 경쟁력 강화가 핵심 목표다. 투자 확대와 자사주 소각을 동시에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 빅테크와는 결이 다르지만, 성장성과 주주환원을 함께 잡으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모든 기업이 삼성전자처럼 투자와 환원을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특히 국내 산업계에서는 자사주 소각이 획일적 규범처럼 굳어질 경우 업종과 기업별 사정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와 AI, 바이오처럼 장기 자본 투입이 경쟁력을 좌우하는 산업에서는 당장의 주주환원보다 중장기 투자 여력이 더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소각이냐 투자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어떤 선택이 기업의 지속 가능한 가치와 주주 이익을 함께 키우느냐다. 국내 기업의 자사주 소각 확대는 그간 취약했던 주주친화 정책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반면 미국 빅테크의 매입 축소는 성장 산업에서 투자 자체가 가장 강한 주주환원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삼성전자와 SK의 이번 결정은 국내 시장에선 분명 강한 신호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 재평가가 자사주 소각만으로 완성되기는 어렵다. 예측 가능한 배당 정책, 투명한 지배구조, 책임 있는 자본 배분 원칙이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 그래야 주주환원은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기업가치 정상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