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와 금융당국은 지난 18일 자본시장 간담회를 계기로 중복상장 규제를 ‘원칙 금지, 예외 허용’ 기조로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에는 물적분할 뒤 중복상장에 대해 제한적으로 심사해 왔지만, 앞으로는 분할뿐 아니라 인수·신설 자회사까지 실질적 지배력이 있으면 중복상장 유형으로 판단해 엄격히 심사한다는 방침이다.
이번 조치의 핵심은 중복상장 판단 범위를 넓히고, 모회사 이사회 책임을 무겁게 하는 데 있다. 정부는 외부감사법상 종속회사, 공정거래법상 수직적 지배관계에 있는 계열회사 상장까지 심사 대상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자회사 상장을 추진할 때는 모회사 이사회가 일반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따져 공시하도록 할 계획이다. 국내는 물론 해외 상장까지 심사 대상에 넣겠다는 점도 눈에 띈다.
그동안 국내 시장에서 중복상장은 성장의 사다리라기보다 가치 이전의 통로로 작동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모회사 투자자가 감수한 시간과 비용, 위험 위에 자회사가 성장했는데도, 정작 상장 뒤 과실은 새로 상장한 자회사 주주에게 집중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남는 것은 껍데기만 된 모회사와 소외된 일반주주라는 비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실제 대기업의 핵심 사업부 물적분할 뒤 자회사 상장이 이어질 때마다 시장은 같은 장면을 봤다. 분할 직후엔 미래 성장성을 강조했고, 상장 국면에선 자금조달 필요성을 앞세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모회사 주주가 어떤 보호를 받는지, 분할 전 투자 판단의 전제가 왜 바뀌는지에 대한 설명은 늘 부족했다. 제도는 있었지만 투자자가 체감한 건 통제보다 방치에 가까웠다.
중복상장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한 축으로 지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배구조가 불투명하고, 핵심 사업 가치가 언제든 다른 그릇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불신이 남아 있으면 시장은 한국 기업에 높은 평가를 주지 않는다.
주주환원 확대만으로 저평가가 해소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시장은 숫자보다 룰을 본다. 그 룰이 공정하지 않다고 판단하면 할인은 구조가 된다.
물론 반론도 있다. 중복상장 문을 좁히면 기업 자금조달이 어려워지고, 프리IPO 투자에 나선 재무적투자자의 회수 경로도 막힐 수 있다는 우려다. 일정 부분 현실적인 지적이다.
그러나 그간 시장이 감내한 비용을 생각하면, 자금조달 편의가 일반주주 희생 위에 서도 되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회수 경로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시장 신뢰 훼손을 용인해 온 관행까지 정당화할 순 없다.
이제 중요한 것은 예외의 폭이다. 정부가 말한 ‘예외 허용’이 불가피한 산업적 필요와 명확한 주주 보호 장치가 갖춰진 경우로 엄격히 제한되지 않으면, 이번 개편도 반쪽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예외가 넓어질수록 시장은 다시 우회로를 찾을 것이고, 원칙 금지라는 말은 선언에 머물 수 있다. 중복상장 규제의 성패는 금지 문구보다 예외를 얼마나 좁고 정밀하게 설계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 자본시장 전문가는 “중복상장 금지는 한국 증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이라며 “기업 자금조달 필요를 이유로 예외를 쉽게 열어주면 과거와 다를 게 없고, 결국 일반주주만 다시 비용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제도 개편은 상장 문턱을 조정하는 수준에 머물 게 아니라, 모회사 주주 권익을 침해하는 구조를 시장에서 퇴출하는 신호가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