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자산 대물림·수도권 쏠림…계층 고착의 한국

기사입력:2026-03-27 14:27:22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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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부모의 자산이 자녀의 출발선을 정하고, 태어난 지역이 삶의 궤적을 가르는 사회를 두고 여전히 능력주의를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은행의 ‘지역간 인구 이동과 세대간 경제력 대물림’ 보고서는 한국 사회가 오래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다시 꺼내 들었다. 부모의 경제력은 여전히 자녀 세대에 강하게 이어졌고, 그 강도는 소득보다 자산에서 더 컸다. 최근 세대로 올수록 대물림은 더 심해졌다. 여기에 지역 격차까지 겹치면서 계층이동의 사다리는 더 가팔라졌고, 어떤 이들에게는 아예 끊긴 것처럼 보인다.

이 보고서가 무거운 이유는 숫자만 냉정해서가 아니다. 이제 한국 사회의 불평등은 단순히 연봉 차이나 취업 성패로 설명되지 않는다. 자산 격차는 주거와 교육, 이동 가능성의 차이로 이어지고, 그 차이는 다시 다음 세대의 기회 격차로 굳어진다. 예전처럼 “열심히 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경험이 아니라 구호가 돼 간다.

더 뼈아픈 대목은 지역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는 오래된 문제다. 그러나 이제 그 격차는 생활 인프라나 문화 환경의 차원을 넘어 계층 재생산의 통로가 됐다. 많은 사람이 태어난 지역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수도권의 교육과 일자리, 자산시장 기회는 특정 지역 출생자에게 상대적으로 더 넓게 열리고 비수도권 출생자에게는 더 좁게 주어진다. 지역 격차가 곧 계층 격차로 번지는 구조다.

실제로 다른 지역으로 옮긴 자녀는 부모보다 소득 수준이 높아진 경우가 많았고, 고향에 남은 자녀는 그렇지 못했다. 그러나 그 사다리의 입구는 평등하지 않았다. 비수도권 저소득층에게 수도권 이주는 결심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학비와 주거비, 생활비, 구직 비용이 겹치는 순간 이동은 도전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형식적으로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지만, 실제로는 부모의 소득과 자산이 있어야 건널 수 있는 길이 된 셈이다.

이 지점에서 한국 사회는 오래된 자기기만과 마주해야 한다. 지방 청년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두고 개인 선택의 문제라고만 해석해왔다. 반대로 비수도권에 남은 청년에게는 더 버티고 더 견디라고 요구해왔다. 하지만 보고서가 보여준 것은 훨씬 구조적인 현실이다. 이동할 수 있는 사람은 올라서고, 이동하지 못하는 사람은 뒤처지기 쉬운 구조다. 지방에 남은 사람이 덜 노력해서가 아니다. 기회가 한쪽으로 쏠린 사회가 개인에게만 적응을 강요한 결과다.

그렇다고 해법이 모두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데 있을 수는 없다. 그것은 사다리를 복원하는 정책이 아니라, 사다리가 놓인 곳으로 더 빨리 몰려가게 만드는 정책일 뿐이다. 이미 과밀과 비용, 경쟁의 피로를 감당하는 수도권에 더 많은 청년을 밀어 넣는 방식은 장기 해법이 될 수 없다. 더 근본적인 처방은 비수도권에서도 계층상승이 가능한 공간을 만드는 데 있다.

그래서 보고서가 제시한 해법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비수도권 학생의 상위 교육기회 접근성을 넓히자는 문제 제기다. 거점대학 집중 육성은 지역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배움의 경로를 만들자는 주문이다. 거점도시 중심 투자는 비수도권 안에서도 산업과 일자리, 교육과 정주 여건이 결합한 성장축을 세우자는 구상이다. 모두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사람을 탓하지 말고 구조를 다시 설계하라는 뜻이다.

물론 이런 대안이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지역별 비례선발제는 공정성 논란을 부를 수 있다. 거점대학 육성은 막대한 재정과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거점도시 전략은 지역 내 또 다른 불균형 논란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그래서 더 미룰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지금처럼 모든 지역에 얇게 예산을 나눠주고, 모든 대학을 비슷하게 지원하며, 균형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갈등만 관리하는 방식으로는 계층 고착을 되돌리기 어렵다.

정책의 초점도 바뀌어야 한다. 지방 소멸을 막자는 구호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남느냐가 아니라, 남아도 올라설 수 있느냐다. 비수도권 청년이 부모의 자산과 무관하게 좋은 교육을 받고 괜찮은 일자리를 얻고 자산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지역 정책이 복지나 배려의 차원을 넘어 진짜 기회 정책이 된다.

사회는 종종 청년에게 묻는다. 왜 떠나느냐고, 왜 버티지 못하느냐고.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물어야 한다. 왜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더 좁은 기회와 더 낮은 이동성을 감수해야 하느냐고. 왜 부모의 자산이 적다는 이유로 더 먼 교육과 일자리의 문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하느냐고.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한국 사회의 능력주의는 설득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결국 이 보고서가 던진 메시지는 단순하다. 계층이동의 위기는 개인의 패배가 아니라 구조의 실패라는 점이다. 사라진 사다리를 개인 탓으로 돌리는 사회는 더 불공정해질 뿐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노력하라’는 훈계가 아니라, 어디서 태어나든 다시 올라설 수 있는 사다리를 공적으로 복원하겠다는 국가의 결단이다. 주소가 미래를 결정하는 사회를 정상이라 부를 수는 없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