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8일 디지털자산거래소 공동협의체(DAXA), 가상자산거래소와 함께 거래소의 ‘강화된 출금 지연 제도’를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기존 출금지연 제도의 틀을 유지하되, 그동안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었던 예외 적용 기준을 손질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당국은 거래소별로 자체 운영되던 예외 기준이 지나치게 느슨하거나 불명확해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이를 우회 통로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보고 있다.
앞서 금융당국은 지난해 5월 가상자산 연계계좌를 통한 보이스피싱 피해금 편취를 막기 위해 ‘가상자산 출금 지연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신규 이용자 등에 대해 가상자산 출금을 일정 시간 제한하는 방식이다. 피해금이 거래소 연계 은행 계좌를 거쳐 거래소 내 계정으로 들어온 뒤 가상자산으로 바뀌고, 다시 다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빠져나가는 과정을 지연시켜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장치다.
금융당국이 설명한 피해금 이동 구조를 보면,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피해자로부터 받은 돈을 거래소 연계 은행 계좌로 입금한 뒤 거래소 안에서 가상자산을 매수하고, 이를 외부 지갑이나 다른 거래소로 출금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빼돌린다. 이 과정에서 출금 시점을 늦추면 지급정지나 이용중지 조치가 개입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다만 최근 거래소들의 자체 내규를 점검한 결과, 거래소들이 자체 기준에 따라 출금지연 예외를 허용하고 있었고 예외 적용을 위한 최소 기준도 명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거래소별 기준이 다르게 운영되면서 가입 기간이나 매매 이력 등 예외 기준을 비교적 쉽게 충족할 경우 보이스피싱 범죄자가 범죄수익금을 즉시 인출할 수 있는 문제도 확인됐다고 금융당국은 설명했다.
실제 수치도 이런 문제를 보여준다.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6∼9월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발생한 사기이용계좌 2526건 가운데 59%인 1490건이 출금지연 예외 대상 계좌에서 발생했다.
금액 기준으로도 예외 계좌에서 발생한 비중이 적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거래소별 편차는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출금지연 예외가 범죄 자금 유출의 주요 통로 가운데 하나로 작동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과 DAXA, 가상자산거래소는 거래소별로 다르게 운영되던 출금지연 예외 기준을 정비해 강화된 기준을 반영한 통일된 표준내규를 마련했다.
앞으로는 가상자산 거래 횟수와 거래 기간, 입출금 금액 등을 필수 고려 요소로 반영하고, 예외를 인정할 수 없는 구체적 요건도 명시한다. 지금까지 일부 거래소가 거래일수, 회원 이력, 입출금 횟수, 거래 금액, 금융사고 이력 등 각기 다른 요소를 중심으로 예외를 판단했다면, 앞으로는 공통된 기준 아래에서 예외 적용 여부를 가리게 되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통일된 표준내규를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출금지연 예외 대상 고객이 기존 대비 1% 이내로 감소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예외 인정 범위를 대폭 줄여 범죄 악용 가능성을 낮추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정상적인 거래까지 과도하게 제한하지 않도록 예외가 필요한 경우는 남겨두겠다는 입장이다.
예외 적용 고객에 대한 사후관리도 강화한다.
금융당국은 출금지연 예외 적용 고객을 대상으로 자금 원천 확인 등 강화된 고객확인 절차를 연 1회 이상 실시하고, 가상자산 출금 관련 정보를 수집·분석해 예외 적용 고객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모니터링 시스템도 구축할 예정이다.
단순히 예외 문턱만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예외 적용 이후에도 해당 이용자가 실제로 정상 거래자인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겠다는 취지다. 예외 적용 고객군을 별도로 관리해 우회 인출 시도나 이상 거래 징후를 조기에 포착하겠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은 향후 제도 보완도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강화된 출금 지연 제도 적용에 따라 실제로 보이스피싱 피해가 얼마나 줄었는지를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예외 기준을 우회하는 새로운 수법이 확인될 경우 기준의 적정성을 다시 심의해 즉시 보완할 방침이다.
금융감독원 금융사기대응단 이범승 팀장은 “강화된 출금 지연 제도 적용에 따른 보이스피싱 피해 감소 효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할 계획”이라며 “예외 기준을 우회하는 보이스피싱 자금 인출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기적으로 기준의 적정성을 재심의하고, 운영상 미비점이 발견되면 즉시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정상적인 이용자의 불편이 없도록 청산 등 보이스피싱과 무관한 사유로 즉시 출금이 필요한 경우에는 출금지연 예외를 허용해 소비자 불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치는 가상자산 거래소의 출금지연 제도가 도입된 뒤 예외 규정이 오히려 취약 고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나온 후속 대책이다. 제도 실효성은 결국 통일된 기준이 현장에서 얼마나 엄격하고 일관되게 적용되느냐에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