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4월 경제진단] 중동 충격에 성장 둔화···반도체·추경에도 물가 불확실성 확대 ①

국제유가 급등에 성장·물가 동시 압박
미 관세정책 변수까지 겹쳐 전망 경로 안갯속
기사입력:2026-04-19 19:19:54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국회에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출처 청와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국회에서 2026년도 추가경정예산안 시정연설을 했다(출처 청와대)
[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한국은행이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 충격으로 올해 국내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할 것으로 진단했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추가경정예산 등 정책 대응이 경기 하방을 일정 부분 막아주겠지만, 국제유가 급등과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로 성장과 물가를 둘러싼 부담이 함께 커졌다는 판단이다. 미국 관세정책의 향방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향후 흐름을 가늠하기 더 어려워졌다는 게 한은의 평가다.

한국은행은 지난 10일 발표한 ‘경제상황 평가(2026년 4월)’에서 국내경제가 반도체 경기 호조와 추경에도 불구하고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 충격으로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도 국제유가 상승으로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이 일부 완충 효과를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평가의 핵심은 한국 경제가 연초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흐름을 보였음에도 대외 충격의 강도가 더 커졌다는 점이다.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인 2.0%를 다소 밑돌 것으로 봤다. 내수나 수출의 기초 체력이 갑자기 무너졌다기보다, 중동전쟁이 불러온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가 성장 흐름 전반을 짓누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외부적으로는 성장률 조정 폭이 크지 않아 보여도,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대외 악재가 한꺼번에 겹친 복합 충격의 성격이 짙다.

경제성장 부문을 맡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임웅지 차장은 1분기 흐름은 반도체 수요 확대와 소비 회복에 힘입어 예상보다 강했지만, 2분기 이후에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이 성장의 하방 압력을 키울 것으로 진단했다. 다만 AI 투자 수요와 추경 등 정책 대응이 충격을 일부 흡수할 것으로 봤다.

실제 분기 흐름만 놓고 보면 상반기 안에서도 온도 차가 적지 않다. 1분기는 예상보다 강했다. 한은은 1분기 성장률이 전기 대비 기준으로 당초 예상치인 0.9%를 상당폭 웃돌 것으로 분석했다. 반도체 수요 확대에 힘입어 수출이 큰 폭으로 늘었고, 소득과 자산 여건 개선, 심리 호조를 바탕으로 소비 회복세도 이어졌기 때문이다. 연초만 보면 수출과 소비가 함께 받쳐주며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탄탄한 흐름을 보인 셈이다.

문제는 2분기 이후다. 한은은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본격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판단했다. 원유와 LNG 가격이 오르면 기업의 생산비와 물류비 부담이 커지고, 이는 수출 채산성과 내수 회복 흐름을 동시에 약화시킬 수 있다. 공급망 차질이 현실화하면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도 더 커진다. 결국 1분기 선방이 연간 성장 흐름 전체를 지켜주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한은이 경기 급락을 기본 시나리오로 본 것은 아니다. 한은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견조한 AI 투자 수요와 추경 등 정책 대응이 충격을 일부 완충할 것으로 예상했다. 반도체 업황 개선이 수출과 설비투자의 버팀목이 되고, 재정 대응이 내수 충격을 일정 부분 줄여줄 수 있다는 의미다. 하반기에는 중동 상황이 점차 진정되면서 회복 흐름이 재개될 것으로 봤지만, 에너지 공급망 정상화가 늦어질 가능성을 감안하면 회복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 경기와 정책 대응이 하방을 막아주는 반면, 국제유가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가장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한국 경제는 대외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수입 부담도 큰 구조여서 국제 에너지 가격과 공급망 상황이 흔들리면 그 여파가 수출과 투자, 물가, 소비 전반으로 빠르게 번질 수밖에 없다. 이번 평가가 단순한 성장률 전망 수정이 아니라 대외 충격의 파급 경로를 경고한 자료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가 측면에서는 경계감이 더 커졌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인 2.2%를 상당폭 웃돌 것으로 내다봤다. 국제유가 상승이 비용 측면의 물가 압력을 크게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월보다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근원물가 상승률은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폭이 둔화하면서 소폭 낮아졌다. 물가 내부 구성은 일부 엇갈리지만, 전체 물가를 다시 밀어 올리는 바깥 충격이 강해졌다는 점은 분명하다는 의미다.

물가 부문을 맡은 물가동향팀 장태윤 과장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비용 측면의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됐지만, 정부의 물가안정대책과 최근 농산물 가격 안정세가 물가 오름폭 일부를 누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향후 물가 흐름은 유가 충격의 전이 정도와 지속 기간에 크게 좌우될 것으로 봤다.

다만 한은은 물가가 유가 상승 폭만큼 일방적으로 치솟는 흐름으로 단정하지는 않았다. 정부의 물가안정대책과 최근 농산물 가격 안정세가 소비자물가 오름폭 일부를 상쇄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앞으로의 물가 흐름은 국제유가가 얼마나 더 오를지, 또 유가 충격이 가공식품과 공공요금, 서비스 가격 등 다른 품목으로 얼마나 번질지에 달렸다는 게 한은 판단이다. 물가 방향은 위쪽이지만, 그 폭과 속도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매우 큰 셈이다.

세계경제 여건도 한국에는 우호적이지 않다. 한국은행은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와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로 세계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견조한 AI 투자가 성장세를 떠받치겠지만 전쟁 여파로 성장의 하방 압력이 점차 높아질 것으로 봤다. 유로지역은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회복세가 약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중국은 비교적 높은 에너지 자급률과 상당한 원유 비축량 등을 바탕으로 공급 충격을 일부 흡수하면서 4% 중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됐다.

세계경제 부문을 담당한 국제종합팀 김보희 차장은 중동전쟁이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이어지면서 세계경제 성장세를 전반적으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미국 관세정책의 향방까지 불투명해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점도 짚었다.

이 대목은 한국 경제를 둘러싼 외부 환경이 단순히 한두 군데 나빠진 수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미국은 성장 둔화 압력이 커지고, 유럽은 에너지 충격에 더 취약하며, 중국 역시 방어력은 있지만 글로벌 수요를 강하게 끌어올릴 정도의 여건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결국 수출을 끌어줄 해외 수요가 전반적으로 약해질 가능성이 있고, 그 와중에 에너지 가격 부담은 국내 생산비와 물가를 다시 자극하는 이중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은은 특히 미국 관세정책의 향방이 불투명한 가운데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성장과 물가의 전망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강조했다. 경제모형 부문을 맡은 모형전망팀 박병국 과장도 보도자료에서 성장과 물가의 방향뿐 아니라 충격의 강도와 지속 기간, 정책 대응 효과까지 함께 봐야 하는 국면이라고 진단했다. 단순히 숫자 하나를 고쳐 잡는 수준이 아니라, 전망의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는 의미에 가깝다.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는데 물가 상방 압력까지 다시 높아지는 흐름은 정책 당국에도 부담이다. 경기를 떠받치려면 대응 강도를 높여야 하지만, 물가를 생각하면 쉽게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시장이 이번 한은 평가를 단순한 전망 수정이 아니라 사실상 복합위험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성장률이 2.0%를 다소 밑도는 수준으로 조정됐다는 문구만 놓고 보면 변화가 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국제유가 상승,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긴장, 미국 통상정책 변수라는 네 가지 위험이 동시에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무역 의존도가 높고 에너지 수입 비중이 큰 경제에서는 이런 외부 충격이 생산과 소비, 투자와 물가를 동시에 자극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 경기 호조와 추경은 경기의 방어선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국제유가와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는 그 방어선을 계속 흔드는 변수다. 향후 중동 정세와 미국 통상정책, 국제 원자재 가격 흐름이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과 물가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한은이 짚은 올해 성장률 둔화 요인과 반도체·추경의 완충 효과를 더 들여다본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