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8일 국무회의에서 연구비 자율성 강화를 위한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시행령 개정안이 의결됐다고 밝혔다.
이번 개정안은 연구자가 연구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행정 부담을 줄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지난해 11월 과학기술관계장관회의에서 발표된 ‘과학기술로 미래를 선도하는 연구개발 생태계 혁신방안’의 후속 조치다.
핵심은 연구비 집행의 경직성을 낮추는 것이다. 그동안 연구 현장에서는 회의비, 출장비, 연구재료비 등 일상적으로 필요한 비용도 세부 비목과 증빙 기준에 맞춰 집행해야 했다. 간단한 회의나 출장에도 내부 결재, 회의록 등 관련 자료를 갖춰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개정안은 우선 직접비 안에 ‘연구혁신비’ 비목을 새로 만든다. 연구혁신비는 개인 연구자가 연구 수행 과정에서 자주 쓰는 연구재료 구입비, 출장비, 회의비 등을 세부 항목으로 나누지 않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한 항목이다.
연구자는 기존처럼 연구활동비, 연구재료비 등 비목을 일일이 구분하지 않아도 된다. 연구 수행과 관련된 일상적 비용을 연구혁신비 안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집행할 수 있다.
연구혁신비는 직접비 가운데 경직성 비용을 제외한 금액의 10%까지 쓸 수 있다. 최대 한도는 5천만원이다. 다만 건별 상한은 둔다. 활동비 성격의 비용은 건별 50만원, 재료비 성격의 비용은 건별 300만원까지 사용할 수 있다.
증빙 절차도 간소화된다. 기존에는 회의나 출장 때 내부 결재 문서, 회의록 등 여러 자료가 요구됐다. 앞으로 연구혁신비는 카드매출전표와 사용 목적을 중심으로 증빙을 줄인다. 사용 목적은 연구비통합관리시스템과 자동 연계하는 방식으로 관리한다.
연구혁신비에서 회의비를 사용할 때 적용되던 외부 참석자 필수 요건도 없어진다. 연구자들이 내부 논의나 연구 아이디어 회의에도 회의비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조치다.
다만 연구혁신비는 곧바로 모든 국가 연구개발 사업에 적용되지는 않는다. 과기정통부는 연구비통합관리시스템 정비와 협약 변경 절차를 거쳐 오는 6월 일부 준비된 사업에 먼저 적용할 계획이다. 전면 시행 시점은 2027년이다.
비영리 연구기관의 간접비 사용 방식도 크게 바뀐다. 기존 방식은 사용 가능한 항목을 규정에 열거하는 포지티브 방식이었다. 연구 수행과 관련이 있더라도 규정에 명시되지 않으면 간접비 집행이 어려웠다.
개정안은 이를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한다. 앞으로는 사용 불가 항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연구 관련 비용에 간접비를 쓸 수 있다. 연구 환경 변화에 따라 새 비용이 생겨도 별도 규정 개정을 기다릴 필요가 줄어든다.
예컨대 AI 서비스 이용 비용처럼 최근 연구 현장에서 새롭게 필요성이 커진 비용도 연구 관련성이 인정되고 사용 불가 항목에 해당하지 않으면 간접비로 집행할 수 있다. 그동안 연구 수행과 관련이 있어도 사용이 제한됐던 연구대응자금 등도 간접비 사용 대상에 포함된다.
사용이 제한되는 항목은 별도로 정했다. 산업단지가 연구개발과제 수행에 대한 반대급부 없이 대학에 지급하는 비용, 배상금·위약금, 연구와 관련 없는 비용 등은 공통 불가 항목이다.
전임교원 또는 이미 과제에서 인건비를 받는 연구자와 연구지원인력의 인건비, 대학원생 성적 우수 장학금과 조교 장학금 등도 사용할 수 없다. 연구개발과제 수주 보상금, 건축비, 건물 리모델링 비용도 연구지원비 항목에서 제외된다.
간접비 네거티브 전환은 시행령 공포 후 즉시 시행된다.
회의비 규제도 완화된다. 기존에는 연구 관련 아이디어 논의 과정에서 회의비 식비를 쓰려면 사전에 결재를 받아야 했다. 과기정통부는 이 요건을 폐지해 연구자들이 연구 관련 논의와 네트워킹을 보다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했다.
비영리기관이 연구재료비를 사용할 때 갖춰야 하는 증빙자료도 줄어든다. 앞으로는 검수확인서를 중심으로 증빙을 간소화한다.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돼 온 형식적 행정 절차를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번 개편은 연구비 집행의 자율성을 넓히는 동시에 연구기관의 책임 있는 관리 역량을 요구한다. 증빙 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연구비 사용 목적을 명확히 기록하고, 연구비통합관리시스템을 통한 사후 관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연구 현장에서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연구자가 행정 서류 작성에 쓰는 시간을 줄이면 연구 설계, 실험, 분석, 협업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기술 연구처럼 비용 항목이 빠르게 변하는 분야에서는 간접비의 네거티브 전환이 현장 대응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자율성이 확대되는 만큼 부정 집행을 막을 장치도 중요하다. 정부가 연구비 집행 규제를 줄이는 과정에서 사후 점검 기준과 책임 소재를 명확히 하지 않으면 제도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 연구비 사용의 유연성과 투명성을 함께 확보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꼽힌다.
과기정통부는 이번 제도 개선을 ‘연구행정 혁신+’의 첫 번째 과제로 추진한다고 설명했다. ‘연구행정 혁신+’는 불필요한 연구 규제를 줄이고 연구자에게 자율성과 연구 몰입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정책 브랜드다.
과기정통부는 연구비 자율성 강화를 시작으로 불필요한 행정 서식 폐지와 간소화 등 추가 제도 개선 과제도 순차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다.
박인규 과기정통부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은 “과기정통부는 연구자들이 연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행정 부담을 완화하고 불편 사항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본부장은 “연구자들의 연구 역량과 기술력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연구 몰입을 방해하는 사소한 사항이라도 불필요한 규제를 적극 발굴해 개선하겠다”며 “이번 연구비 자율성 강화를 시작으로 규제 개선 사항을 연속적으로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안혜린 기자 rin7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