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도 정상회담] 조선·AI·반도체까지···전략산업 협력 가속 ②

산업협력위 신설·CEPA 개선 협상 가속···교역·투자 제도 기반 강화
조선소 건립·철강 합작·청정에너지 협력···‘디지털 브릿지’로 첨단산업 연계
기사입력:2026-04-30 09:26:18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일 인도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출처: 청와대)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지난 20일 인도 뉴델리에서 정상회담을 열었다(출처: 청와대)
[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한국과 인도가 조선, 인공지능(AI), 반도체, 금융, 공급망을 핵심축으로 경제·산업 협력의 새 틀을 마련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는 지난 2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양국 경제협력을 기존 교역 중심에서 전략산업, 첨단기술, 공급망 협력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14억 인구와 거대 내수시장을 가진 인도, 제조와 첨단산업 경쟁력을 갖춘 한국의 상호 보완성을 실질 성과로 연결하겠다는 취지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첫 장관급 경제협력 플랫폼인 ‘한·인도 산업협력위원회’를 신설하기로 했다. 산업협력위원회는 무역과 투자, 핵심광물, 원전, 청정에너지, 공급망 안정, 기업 애로 해소 등을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협의체로 운영된다.

정부는 산업협력위원회를 통해 양국 간 협력 수요가 큰 분야를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민간 기업의 투자와 진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는 방침이다. 인도에 진출했거나 진출을 검토 중인 한국 기업들이 제기해 온 규제, 행정 절차, 예측 가능성 문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전망이다.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 협상도 속도를 내기로 했다. CEPA는 2010년 발효된 양국 간 핵심 통상 협정이다. 양국은 글로벌 공급망 재편, 디지털 전환,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 변화한 통상 환경을 반영해 협정을 개선하기로 했다.

개선 협상에는 상품, 서비스, 원산지 등 전통적 통상 분야와 함께 공급망 협력, 디지털 규범, 민관 협력, 녹색경제 등 신통상 의제가 포함될 예정이다. 양국은 이를 통해 기업 친화적 무역·투자 환경을 조성하고, 한국 기업의 인도 시장 접근성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번 회담에서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조선이다. 양국은 ‘조선·해운·해상물류 분야 파트너십을 위한 포괄적 프레임워크’를 채택하고 조선 분야 협력을 본격화하기로 했다.

한국은 세계적 수준의 조선 기술과 건조 역량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는 선박 수요 증가와 해양 인프라 확충 필요성이 크다. 양국은 한국 기업의 기술력과 인도 정부의 조선 시설 건설 지원, 선박 발주 수요, 생산 보조금 등 정책 지원을 결합해 인도 조선 시장에서 협력 기회를 확대하기로 했다.

HD현대는 인도 NSHIP TN, 사가르말라 금융공사와 신규 조선소 설립을 위한 핵심 인프라 구축 및 합작법인 설립 추진 MOU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HD현대는 신규 합작 조선사의 최대 주주로 조선소 운영 전반을 맡을 예정이다. 인도 조선 산업 육성과 한국 조선업의 해외 시장 확대가 맞물릴 수 있는 사업으로 평가된다.

철강 협력도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포스코는 인도 JSW그룹과 연 600만t 규모의 고기능성 강재 생산을 위한 일관제철소 합작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의 자동차, 가전, 인프라 산업 확대에 따라 고급 철강 수요가 커질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AI와 반도체 협력도 정상회담의 핵심 성과로 꼽힌다. 양국은 ‘디지털 브릿지 프레임워크’를 체결해 AI, 디지털, 데이터 거버넌스, 반도체 분야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인도는 풍부한 정보기술 인력과 소프트웨어 역량을 갖춘 국가다. 한국은 반도체와 제조, 디지털 인프라 분야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양국은 인도의 AI 인재와 한국의 제조·반도체 기반을 연계하면 첨단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모디 총리는 회담에서 조선업, AI, 반도체, 청정에너지를 향후 10년간 중요한 협력 분야로 꼽았다. 그는 인도의 규모와 한국의 속도가 결합하길 희망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도 한국의 제조 역량과 인도의 디지털 역량을 결합해 전략산업 협력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금융 분야 협력도 강화된다. 양국은 금융당국 간 협력 MOU를 통해 금융기관 상호 진출과 핀테크 협력을 지원하기로 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 금융시장을 토대로 한국 금융기업의 진출 기반을 마련하고, 디지털 금융 서비스 협력도 넓힌다는 계획이다.

청정에너지와 핵심 원자재 공급망 협력도 이번 회담의 주요 성과다. 양국은 ‘에너지 자원 안보 협력 공동성명’을 통해 나프타와 석유제품 등 자원 공급 불안에 공동 대응하기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했다. 중동 정세 불안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에너지와 원자재 수급 안정은 양국 모두에 시급한 과제다.

중소기업 지원 방안도 논의됐다. 양국은 중소기업 협력 MOU를 개정해 주인도 한국대사관과 인도 규제 당국 간 실무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한국 중소기업의 인도 진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행정 부담과 규제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조치다.

모디 총리는 한국 기업의 애로사항을 직접 듣고 해결 방안을 찾겠다는 뜻을 밝혔다. 인도 총리실이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 한국 전담 데스크를 설치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기업 현장의 목소리가 실제 제도 개선으로 이어질지가 향후 성과를 가를 대목이다.

이번 국빈 방문에는 국내 54개 기업과 단체에서 200여 명 규모의 경제사절단이 동행했다. 삼성전자, 현대차, LG, 포스코, HD현대, 효성, 크래프톤 등 주요 기업이 인도 측 기업과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삼성은 인도 현지에서 첨단 제품 생산과 연구개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신흥시장 종합 연구개발센터를 2028년 말 인도에 완공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효성은 전력망과 펌프 공장 건설을 통한 현지 인프라 협력 의지를 밝혔다. 크래프톤은 인도 게임 제작 생태계 지원을 통해 콘텐츠 협력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양국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현재 연간 250억 달러 수준인 교역 규모를 2030년까지 500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인도는 한국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지만, 인도의 경제 규모와 성장 잠재력에 비춰 교역과 투자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많다.

대통령실은 이번 회담이 한·인도 경제협력을 자동차와 전자 중심에서 조선, 철강, AI, 반도체, 금융, 청정에너지로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정부 간 협의체와 민간 투자, 전략산업 협력을 함께 묶은 점도 의미 있는 변화로 보고 있다.

관건은 이행이다. CEPA 개선 협상은 양국 산업계의 이해가 엇갈릴 수 있는 민감한 과제다. 조선소 건립과 철강 합작, AI·반도체 협력도 투자 규모, 기술 이전, 현지 규제, 인력 확보 등 세부 조건이 맞아야 실제 성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산업협력위원회가 형식적 회의체에 그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 애로를 신속히 해소하고, 협력 사업별 일정과 책임 주체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야 정상 간 합의가 선언을 넘어 투자와 고용, 교역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한·인도 경제협력은 이제 선언보다 이행의 단계로 넘어섰다. 2030년 교역 500억 달러 목표와 전략산업 협력 확대가 현실이 되려면 양국 정부의 속도 있는 후속 조치와 민간 기업의 과감한 투자가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