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위는 지난달 29일 제8차 정례회의를 열고 가상자산시장 시세조종 사건 2건의 혐의자에 대해 수사기관 통보 조치를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이 가상자산시장 불공정거래 혐의를 조사한 데 따른 것이다.
첫 번째 사건은 혐의자가 특정 가상자산을 미리 대량 매수한 뒤 고가매수 주문 등을 단기간에 집중 제출해 가격을 끌어올린 사례다. 혐의자는 가격 상승 이후 보유 물량을 매도해 수천만원의 부당이득을 얻은 혐의를 받는다.
금융당국은 이 사건을 사전매집, 시세형성, 차익실현으로 이어지는 전형적 시세조종 행태로 판단했다. 혐의자는 시세조종 대상으로 삼은 가상자산을 사전에 수천만원어치 사들였다. 이후 고가매수 등 시세조종성 주문을 집중 제출해 급격한 가격 상승을 유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차익실현 과정에서는 허수 매수 주문도 활용됐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사례에 따르면 혐의자는 낮은 가격대에 허수 매수 주문을 내 시세 하락을 방어하는 듯한 외관을 만들었다. 일반 이용자의 매수세가 유입되자 보유 물량을 일시에 매도하고, 이후 허수 매수 주문을 취소했다.
이 같은 거래는 시장에 왜곡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매수 주문이 두텁게 쌓인 것처럼 보이면 일반 투자자는 가격 하락 위험이 작다고 판단할 수 있다. 실제로는 시세조종 세력이 보유 물량을 처분하기 위해 만든 인위적 장치일 수 있다.
금융당국은 해당 가상자산의 일평균 거래량과 가격 변동성이 이전보다 크게 확대됐다고 설명했다. 시세 흐름과 혐의자의 보유 잔고도 유사하게 움직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를 혐의자가 높은 시장 지배력을 행사한 정황으로 봤다.
두 번째 사건은 API 키를 악용한 시세조종 사례다. 혐의자는 가상자산거래소 다수 계정의 API 키를 일정한 대가를 주고 빌린 뒤 계정 간 통정매매와 순차적 고가매수 주문을 반복한 혐의를 받는다.
API 키는 가상자산거래소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계정 접근과 거래 실행에 쓰이는 수단이다. 가상자산 매매는 물론 가상자산과 현금 입출금에도 사용될 수 있다.
혐의자는 여러 계정의 API 키를 확보한 뒤 각 계정으로 순차적으로 고가매수 주문을 냈다. 금융당국은 이를 이른바 ‘릴레이’식 고가매수 주문으로 봤다. 이어 빌린 계정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사고파는 거래를 일으켜 매매가 활발한 것처럼 꾸민 것으로 조사됐다.
통정매매는 실제 수요와 공급에 따른 거래가 아니라 사전에 짜고 매매를 반복하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거래량이 늘고 시장 관심이 커진 것처럼 보인다. 일반 투자자가 이를 정상적인 매수세로 오인해 뒤따라 매수하면 시세조종 세력은 보유 물량을 팔아 차익을 실현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이런 방식이 가상자산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을 훼손한다고 봤다. 특히 자동화 거래 수단인 API가 다수 계정과 결합하면 짧은 시간에 가격과 거래량을 동시에 왜곡할 수 있다. 피해는 뒤늦게 매수한 일반 투자자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위원회 김성진 가상자산과장은 “API 키는 거래소 계정 접근과 거래 실행을 위한 핵심 수단인 만큼 이용자 본인만 사용해야 한다”며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대여한 API 키가 불공정거래에 쓰이면 민형사상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이용자가 API 키를 타인에게 제공하거나 대여하면 거래소 약관에 따라 서비스 접속 차단, API 서비스 제한 등의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대여한 API 키가 불공정거래나 자금세탁에 사용되면 명의자가 불법행위의 공범으로 처벌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감원은 주요 가상자산거래소에 API 키 대여 금지와 제재 가능성을 명확히 안내하도록 개선 조치했다. API 키 발급 때 이용자가 사용할 IP 등록을 의무화하고, 등록된 IP를 통해서만 API 서비스에 접근하도록 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거래소의 이상거래탐지시스템도 강화된다. 금감원은 주요 거래소가 API 키 부당대여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 계정을 선별하도록 탐지 기준을 정교화할 계획이다. 계정 접속 정보, 주문 패턴, 반복적 고가매수, 통정매매 의심 거래 등을 종합해 차단 체계를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김 과장은 “합리적 이유 없이 가격과 거래량이 급등한 가상자산에 대한 추종매수를 자제해야 한다”며 “매매를 유인할 목적으로 이상거래 행위를 반복하면 금융당국의 조사와 조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위와 금감원은 가상자산시장 불공정거래를 상시 모니터링하고, 의심거래를 발견하면 즉시 조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엄정히 조사·조치한다는 방침이다.
가상자산시장은 거래 속도가 빠르고 자동화 주문이 쉽다. 소수 계정이나 대여받은 API 키만으로도 단기간에 가격과 거래량을 왜곡할 수 있다. 사후 제재만으로는 투자자 피해를 막는 데 한계가 있다. 거래소의 실시간 감시, API 권한 관리 강화, 투자자의 계정 보안 의식이 함께 작동해야 시장 질서를 지킬 수 있다.
안혜린 기자 rin7961@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