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큰증권 시대] 금융거래 판 바꾸는 토큰화···결제 단축·소액투자 확대 ③

거래·청산·결제 통합 처리···중개비용 줄이고 24시간 거래 가능
자산 이전·대금 지급 동시 처리···고가 자산 쪼개 소액 투자 확대
기사입력:2026-05-28 17:29:29
[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자산 토큰화가 금융시장의 거래·결제·투자 방식을 바꾸는 인프라 혁신으로 주목받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14일 공개한 BOK 이슈노트 ‘국내외 자산 토큰화 현황 및 향후 정책 과제’에 따르면 자산 토큰화는 증권과 실물자산의 권리를 블록체인 등 분산원장에 기록해 발행·유통·결제를 통합 처리하는 방식이다. 단순히 투자상품을 디지털화하는 수준을 넘어 금융시장 후선 인프라를 재편할 수 있는 변화로 평가된다.

금융위원회 제공
금융위원회 제공
기존 금융거래는 거래 체결 이후 청산, 결제, 대사, 사후관리 절차가 여러 기관과 시스템을 거쳐 이뤄진다. 증권사, 청산기관, 예탁기관 등이 각자 장부를 관리하고 거래정보를 반복해서 대조한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오류 가능성도 생긴다. 결제도 통상 하루나 이틀 뒤에 완료된다.

토큰화된 환경에서는 이 절차를 분산원장 위에서 간소화할 수 있다. 거래 체결부터 권리 이전, 대금 지급, 사후관리까지 하나의 디지털 장부에서 처리하면 장부 불일치와 중복 검증 부담이 줄어든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업무 처리 시간이 짧아지고 중개·관리 비용을 낮출 여지가 커진다.

결제주기 단축은 가장 직접적인 효과다. 한국은행은 스위스 토큰화 자산 거래소인 SIX Digital Exchange 사례를 들었다. UBS가 2022년 11월 발행한 3억7500만스위스프랑 규모의 디지털 채권은 분산원장 기반 중앙예탁결제 인프라에서 원자적 결제 방식으로 처리됐다. 기존 증권거래의 T+2 결제주기와 달리 체결 직후 증권·대금 동시결제 방식으로 즉시 자동 결제가 가능했다.

시장 운영의 유연성도 높아진다. 전통 금융시장은 영업시간과 국가별 시차에 묶인다. 거래와 결제가 특정 시간대에 몰리고, 국경 간 거래는 더 복잡해진다. 토큰화 인프라는 기술적으로 24시간, 주 7일 거래를 가능하게 한다. 시장참가자는 시간과 지역 제약을 덜 받고 자산 이전과 담보 활용을 탄력적으로 할 수 있다.

특히 국경 간 거래와 업무시간 외 거래에서 효용이 크다. 해외 시장이 닫힌 시간에도 토큰화 자산을 이전하거나 담보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이는 기술적으로 가능한 구조라는 뜻이다. 실제 시장 운영은 법규, 감독 기준, 결제수단, 유동성 여건에 따라 달라진다.

거래 위험을 줄이는 기능도 있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하면 사전에 정한 조건이 충족될 때만 자산 이전과 대금 지급이 동시에 이뤄지도록 설계할 수 있다. 한쪽은 자산을 넘겼지만 돈을 받지 못하거나, 돈은 지급했지만 자산을 받지 못하는 미결제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이른바 원자적 결제는 다수 중개기관이 관여하거나 거래 시간이 길어질수록 커지는 거래상대방 위험을 낮춘다. 결제 불이행 가능성이 줄면 시장참가자의 신뢰도 높아질 수 있다. 금융시장이 커질수록 거래 안정성은 비용 절감만큼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

투자 접근성 확대도 토큰화의 핵심 장점이다. 부동산, 금, 미술품, 대체투자자산처럼 가격이 높은 자산은 일반 투자자가 직접 접근하기 어렵다. 토큰화는 이런 자산을 작은 단위로 나눠 발행할 수 있다. 소액투자자도 과거에는 기관투자자나 고액자산가 중심이던 자산에 투자할 기회를 얻는다.

한국은행은 HSBC의 금 토큰화 사례를 소개했다. HSBC는 금고에 보관된 실물 금을 기초로 금 0.001트로이온스 단위의 분할 소유권을 토큰화한 상품을 출시했다. 실물 금처럼 큰 단위로 거래되던 자산을 잘게 나눠 투자할 수 있게 한 사례다.

국내 조각투자도 같은 흐름에 있다. 부동산, 음원저작권, 미술품 등 기존에는 유동화가 쉽지 않았던 자산을 소액으로 나눠 투자하도록 만들었다. 토큰화와 온체인 거래 인프라가 결합하면 이런 비정형 자산도 보다 표준화된 방식으로 거래될 가능성이 있다.

자산 보유자에게도 의미가 있다. 토큰화는 보유 자산을 기초로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들고 자금을 조달하는 통로가 될 수 있다. 투자자에게는 새로운 자산군이 열리고, 발행자에게는 자금조달 경로가 넓어진다. 자본시장 전체로 보면 상품 공급과 투자 수요를 연결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셈이다.

운영 투명성도 강화될 수 있다. 분산원장에서는 권리 이전과 거래 이력이 실시간으로 기록된다. 참여자는 같은 원장을 확인할 수 있고, 거래 이력은 임의로 바꾸기 어렵다. 이자 지급, 배당, 원금 상환, 청산·결제 절차도 스마트계약에 따라 자동 집행될 수 있다.

이런 구조는 정보 비대칭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발행인과 투자자, 중개기관이 서로 다른 장부를 보며 발생하는 혼선을 줄일 수 있다. 사후 감사와 내부 통제 측면에서도 검증 가능성이 커진다. 금융거래의 핵심인 신뢰를 코드와 장부의 투명성으로 보완하는 구조다.

토큰화의 효과는 금융기관의 단기자금 거래와 담보 관리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날 수 있다. 금융기관은 채권 같은 증권을 담보로 맡기고 단기자금을 빌린다. 이를 환매조건부 거래, 즉 레포 거래라고 한다. 이 거래에서는 담보 이전, 가치 평가, 추가 담보 요청, 청산 절차가 자주 발생한다. 스마트계약을 활용하면 헤어컷 적용, 마진콜, 청산 등 담보 관리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기관용 분산원장 레포 거래 플랫폼인 브로드리지 DLR 사례도 제시했다. 이 플랫폼은 토큰화와 스마트계약을 활용해 레포 거래 결제와 담보 관리를 처리한다. 지난달 거래처리 규모는 하루 평균 약 3680억달러에 달했다.

레포 시장은 금융기관의 유동성 관리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절차가 조금만 개선돼도 비용 절감 효과가 크다. 토큰화가 정착하면 당일 중 짧게 발생하는 유동성 부족에 더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다. 자금시장의 유동성 배분도 효율화될 수 있다.

다만 토큰화의 장점은 기술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분산원장에 권리를 기록해도 법적 효력이 불명확하면 시장은 움직이지 않는다. 결제수단이 안정적이지 않거나 수탁·공시 체계가 부실하면 투자자 신뢰도 얻기 어렵다. 토큰화의 본질은 블록체인 기술 홍보가 아니라 금융거래 인프라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있다.

박상훈 한국은행 금융안정국 비전통금융분석팀 과장은 보고서에서 “자산 토큰화는 발행·유통·결제 방식을 개선해 효율성, 유연성, 접근성 및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거래 전 과정을 분산원장에서 통합 처리하면 결제주기를 단축하고 중개·관리 비용을 줄일 수 있다”며 “스마트계약을 통한 원자적 결제는 거래상대방 리스크를 축소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산 토큰화는 금융시장의 속도를 높이는 기술에 그치지 않는다. 거래가 기록되고 권리가 이전되며 대금이 결제되는 방식을 바꾸는 문제다. 시장이 신뢰할 수 있는 법적 기반과 결제·수탁·공시 인프라를 갖춘다면 토큰화는 자본시장 접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높이는 새 금융 인프라가 될 수 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