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국은 정상회담 직후 경제 현안을 중심으로 후속 협의에 착수했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안제이 도만스키 폴란드 재무장관과 만나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에너지·공급망 영향과 대응 경험을 공유했다. 이번 면담은 정상회담을 계기로 폴란드 측 요청에 따라 이뤄졌다. 양측은 최근 중동 지역 정세 불안이 양국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후속 협력의 첫 과제로는 에너지 안보가 꼽힌다. 중동 지역 긴장 고조는 국제유가와 해상 물류, 원자재 조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정책금융 확대, 추가경정예산 집행 등 대응 조치를 설명했고, 폴란드 측은 2022년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 이후 액화천연가스(LNG) 도입 확대와 발틱 파이프라인 조기 가동 등 에너지 공급망 다변화 경험을 소개했다. 양국이 에너지 안보를 단기 현안이 아닌 구조적 협력 과제로 다루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급망 협력도 중요한 후속 과제로 제시된다. 한-폴란드 협력은 방산과 배터리, 제조업을 중심으로 확대돼 왔지만, 최근 국제 정세는 생산과 물류, 에너지 조달을 통합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환경으로 바뀌고 있다. 폴란드는 유럽 안보의 핵심 축이자 한국 기업의 생산 거점인 만큼 공급망 불안이 장기화할 경우 양국 협력의 안정성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정상회담 이후 경제당국 간 협의가 곧바로 이어진 것도 이런 배경과 맞물려 있다.
방산 협력은 여전히 양국 관계의 중심축이다. 다만 앞으로는 계약 규모 못지않게 이행의 안정성과 협력의 지속 가능성이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획재정부 자료에 따르면 양측은 231억달러 규모의 방산 협력 성과를 평가하고, 양국 기업이 호혜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방향으로 협력을 심화해 나가기로 했다. 정상회담에서 재확인된 대규모 방산 총괄계약이 생산과 납품, 현지화 과정에서 안정적으로 이행될 수 있을지가 향후 협력 수준을 가늠할 기준으로 꼽힌다.
디지털·AI 협력은 새로운 협력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 양국은 2022년 이후 두 건의 지식공유사업(KSP)을 통해 폴란드 중소기업의 디지털 전환 전략에 한국의 정책 경험을 반영해 왔다. 올해 하반기에는 AI 활용 확산을 위한 정책 자문도 추진하기로 했다. 방산과 제조업 중심 협력이 디지털 정책 협력으로 확장되는 흐름으로 해석된다. 이는 양국 협력이 단발성 사업을 넘어 정책과 제도를 공유하는 장기 협력 모델로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양국이 올해 하반기 제2차 한국-폴란드 경제대화를 개최하기로 한 점도 주목된다. 경제대화는 정상회담 성과를 실무 협력으로 연결하는 핵심 채널이 될 전망이다. 에너지, 공급망, 방산, 디지털 협력은 모두 부처 간 조율과 기업 참여가 병행돼야 하는 분야다. 후속 회의에서 구체적인 일정과 사업 구조가 마련돼야 정상회담에서 제시된 협력 구상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대유럽 전략이라는 측면에서도 이번 후속 협력은 의미가 있다. 정부는 최근 핀란드와도 공급망 안정화, 첨단산업, 경제안보 협력 강화를 논의했다. 유럽 내 안보 불안과 보호무역 기조가 짙어지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유럽과 중동부유럽을 잇는 경제안보 협력 축을 넓히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폴란드와의 후속 협력이 안정적으로 작동할 경우 한국의 유럽 전략도 방산 수출 중심에서 공급망과 첨단산업 연계 중심으로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과제도 적지 않다. 에너지 안보 협력은 국제 정세에 따라 변동성이 클 수밖에 없다. 공급망 협력은 기업 투자와 물류 여건, 현지 제도 개선이 함께 맞물려야 한다. 방산은 계약 체결 이후 이행 관리가 중요하고, AI 협력 역시 제도적 기반과 사업 구체화가 뒤따라야 한다. 관계 격상에 걸맞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분야별 실행력 확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한국-폴란드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외연을 넓힌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이제 관심은 후속 이행과 실질 성과에 쏠리고 있다. 에너지와 공급망, 방산과 디지털 협력이 구체적인 사업 성과로 이어질 경우 양국 관계는 유럽 내 한국의 전략 협력 모델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후속 이행이 지연될 경우 관계 격상의 의미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한국-폴란드 협력의 다음 단계는 실행과 성과가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