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4월 경제진단] 유가 급등이 키운 이중 압박···성장 둔화에 물가 상방압력 ③

중동발 공급 충격에 경기·물가 동시 부담
미 관세정책 변수까지 겹쳐 대외 불확실성 커져
기사입력:2026-04-23 17:39:01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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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김봉수 기자] 한국은행이 중동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급등으로 올해 성장과 물가를 둘러싼 부담이 동시에 커졌다고 진단했다. 성장세는 당초 예상보다 둔화할 가능성이 커진 반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기존 전망치를 웃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경기와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한층 확대됐다는 판단이다. 미국 관세정책의 향방까지 불투명한 상황이어서 향후 경제 흐름을 좌우할 변수도 더 많아졌다고 한국은행은 평가했다.

한국은행은 10일 발표한 ‘경제상황 평가(2026년 4월)’에서 국내경제는 반도체 경기 호조와 추가경정예산에도 불구하고 중동전쟁에 따른 공급 충격으로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가도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다만 정부의 물가안정대책이 일부 완충 효과를 낼 수는 있지만, 전체 물가 부담을 되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봤다.

이번 평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성장과 물가를 둘러싼 위험이 동시에 커졌다는 점이다. 통상 성장 둔화 우려가 커지면 물가 압력은 다소 누그러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번에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충격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동시에 물가를 밀어 올리는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 경기 둔화와 물가 상승 압력이 함께 커지는 복합 충격의 성격이 짙다는 뜻이다.

성장 측면에서 한은은 올해 성장률이 기존 전망치 2.0%를 다소 밑돌 것으로 봤다. 1분기에는 반도체 수요 확대와 소비 회복에 힘입어 당초 예상보다 양호한 흐름을 보였지만, 2분기부터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이 본격적인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원유와 LNG 가격 상승은 생산비와 물류비를 끌어올리고, 이는 기업 채산성과 가계 실질구매력을 동시에 약화시키는 경로로 이어질 수 있다. 결국 에너지 가격 충격이 성장률을 끌어내리는 직접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한은의 판단이다.

경제성장 부문을 맡은 조사국 조사총괄팀 임웅지 차장은 보도자료에서 1분기 성장률은 반도체 수요 확대와 소비 회복세에 힘입어 당초 예상을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봤다. 다만 2분기에는 중동발 에너지 가격 급등의 영향이 하방 압력으로 작용하겠지만, 견조한 AI 투자 수요와 추경 등 정부 대응이 충격을 일부 완충할 것으로 진단했다.

물가 부담은 성장보다 더 직접적이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기존 전망치 2.2%를 상당폭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국제유가 상승으로 비용 측면의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서 전월보다 높아졌다. 반면 근원물가 상승률은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폭 둔화 등으로 소폭 낮아졌다. 물가 내부 구성은 엇갈렸지만 전체 물가를 밀어 올리는 외부 충격은 한층 강해졌다는 의미다.

물가동향팀 장태윤 과장은 국제유가 상승으로 비용 측면의 상방 압력이 크게 확대됐지만, 정부의 물가안정대책과 최근 농산물 가격 안정세가 물가 오름폭 일부를 상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향후 물가 경로를 좌우할 핵심 변수로는 국제유가 흐름과 유가 충격의 전이 정도를 꼽았다.

결국 물가 향방은 유가가 어디까지 오를지, 그 충격이 어느 범위까지 번질지에 달려 있다. 국제유가 상승이 석유류 가격에 머물면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가공식품과 공공요금, 서비스 가격으로 번지면 소비자물가의 상방 압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한은이 이번 자료에서 물가 경로의 불확실성을 거듭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충격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지만, 전이 속도와 지속 기간을 예단하기는 쉽지 않다는 얘기다.

한은은 성장과 물가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국내 요인보다 대외 변수에서 더 커지고 있다고 봤다. 세계경제는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원자재 가격 급등과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불확실성 확대로 성장세가 크게 둔화할 것으로 전망됐다.

미국은 견조한 AI 투자가 성장세를 받치겠지만 전쟁 여파로 하방 압력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고, 유로지역은 에너지 가격 상승의 영향을 더 크게 받아 회복세가 약화할 것으로 분석됐다. 중국은 비교적 높은 에너지 자급률과 상당한 원유 비축량을 바탕으로 공급 충격을 일부 흡수하면서 4% 중반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판단됐다.

국제종합팀 김보희 차장은 중동전쟁이 에너지 가격 급등과 공급망 불안,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이어지면서 세계경제 성장세를 전반적으로 끌어내릴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대외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로서는 이런 충격이 수출과 내수, 물가 전반에 더 민감하게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시사했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정책 대응도 더 어렵게 만든다는 점이다. 성장만 보면 경기 방어 필요성이 커지지만, 물가만 보면 경계 강도를 쉽게 낮추기 어렵다. 경기를 떠받치기 위해 대응 강도를 높이면 물가 부담이 남고, 물가를 먼저 보면 경기 하방을 방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성장과 물가의 방향보다 전망 경로의 불확실성을 더 강조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단순히 지표 수준이 아니라, 지표가 어떤 속도와 강도로 움직일지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이라는 뜻에 가깝다.

모형전망팀 박병국 과장은 미국 관세정책의 향방이 불투명한 가운데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더해지면서 성장과 물가 전망 경로에 대한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졌다고 진단했다.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방향만이 아니라 충격의 강도와 지속 기간, 정책 대응 효과를 함께 봐야 하는 국면이라는 의미다.

시장에서는 이번 한은 평가를 사실상 복합위험 경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성장률이 기존 전망을 다소 밑도는 수준으로 조정됐다는 점만 보면 변화 폭이 크지 않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국제유가 상승, 공급망 차질, 지정학적 긴장, 미국 통상정책 변수라는 네 가지 위험이 동시에 성장과 물가를 흔들고 있다. 특히 한국처럼 에너지 수입 비중이 높고 대외 의존도가 큰 경제에서는 이런 외부 충격이 실물경제와 물가에 빠르게 번질 수 있다.

결국 올해 한국 경제는 반도체 경기와 정책 대응이 하방을 막아주는 반면, 유가와 지정학적 리스크가 성장과 물가 모두에 부담을 키우는 구도로 전개될 가능성이 크다.

향후 중동 정세와 미국 통상정책, 국제 원자재 가격 흐름이 올해 한국 경제의 성장과 물가 흐름을 좌우할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경상수지와 수출입 흐름을 중심으로 중동 변수 속 한국 경제의 대외 부문을 짚어본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