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성장률과 재정 여건 변화가 일부 반영된 결과라고 설명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한국 재정의 부담 요인이 구조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6일 기획예산처에 따르면 IMF는 전날 발간한 ‘재정모니터(Fiscal Monitor) 4월호’에서 한국의 일반정부부채비율이 2026년 54.4%, 2027년 56.6%, 2028년 58.5%, 2029년 60.1%, 2030년 61.7%, 2031년 63.1%로 높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일반정부부채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비영리 공공기관 등을 포괄한 국제 비교 기준 지표다. 국가채무(D1)보다 넓은 범위의 재정 상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IMF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국제기구가 재정건전성을 비교할 때 주로 활용한다.
이번 전망에서 가장 눈에 띄는 대목은 한국이 중기적으로 부채비율 상승 폭이 큰 국가군에 포함됐다는 점이다. IMF는 한국과 벨기에를 부채비율이 상당 폭 증가할 국가로 분류했다. 지금 당장의 절대 수치만 놓고 보면 한국의 부채비율은 미국이나 일본, 주요 유럽국가와 비교해 낮은 편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IMF는 한국의 경우 향후 오르는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평가할 때 현재 수준 못지않게 증가 경로와 속도가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정부는 일단 이번 수치가 지난해 10월 IMF 전망보다는 낮아졌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있다. 당시와 비교하면 2026년부터 2030년까지의 한국 부채비율 전망치는 2%포인트 안팎 하향 조정됐다.
기획처는 명목성장률 여건 변화와 최근 재정 상황이 일부 반영된 결과로 보고 있다. 반도체 경기 개선 기대와 물가 흐름, 경제 규모 확대 전망이 분모인 GDP에 영향을 주면서 부채비율 산정치가 다소 낮아졌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정부로서는 국제기구가 한국 재정을 이전보다 비관적으로만 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시장과 학계에서는 숫자 자체보다 추세를 더 주의 깊게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전망치가 직전보다 낮아졌다고 해도 2026년 50%대 중반이던 부채비율이 2031년에는 60%를 웃도는 수준으로 올라설 것이라는 큰 흐름은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치가 내려간 배경이 지출 구조의 획기적 개선이나 재정개혁의 성과라기보다 성장률과 물가 등 거시 변수의 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면 안도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재정건전성은 경기 상황이 좋을 때 방어막을 쌓아두고, 경기 충격이 닥쳤을 때 쓸 수 있는 여력을 확보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부채비율이 완만하게 오르느냐, 가파르게 오르느냐는 정책 대응 여력을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한국의 재정 여건을 둘러싼 구조적 부담은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의무지출 증가가 꼽힌다.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연금, 건강보험, 돌봄, 의료, 복지 분야 재정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이런 지출은 경기 상황과 무관하게 꾸준히 증가하는 성격이 강해 재정의 탄력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세입 기반은 경기 둔화나 자산시장 부진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데, 지출은 구조적으로 늘어나는 방향이라면 중장기 재정수지는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저성장 흐름이 고착화하면 세수 증가 여력까지 제한될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이어진 경기 대응 재정 기조도 중장기 부채 흐름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꼽힌다. 경제 충격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재정으로 방어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실제로 세계 주요국도 팬데믹 이후 확장 재정으로 경기 하방을 막아 왔다.
문제는 일시적 대응이 상시화할 경우다. 성장 잠재력이 둔화하고 민간 활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정부 지출 의존도가 커지면 재정은 쉽게 긴축으로 돌아서기 어렵다. 세수 여건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 상태에서 지출 수요가 누적되면 국가채무는 구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이 한국의 부채 문제를 단순히 한 해의 예산 편성 문제가 아니라 재정체질 문제로 보는 이유다.
IMF가 주목한 것도 결국 이런 중기 흐름으로 읽힌다. 현재의 부채 수준만 놓고 보면 한국은 여전히 비교적 관리 가능한 범주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향후 5년, 10년의 경로를 따져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부채비율이 빠르게 상승하면 금리 변동이나 경기 둔화, 세수 결손, 추가경정예산 편성 같은 충격이 왔을 때 대응 폭이 좁아질 수 있다.
예산의 상당 부분이 이자비용과 의무지출에 묶이면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투자나 취약계층 지원, 산업 전환 대응에 쓸 재원이 줄어들 수 있다. 재정 여력은 결국 국가가 위기에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부채비율이 여전히 다른 선진국보다 낮은데 과도한 우려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절대 수준만 보면 한국은 주요 선진국 평균보다 낮은 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한국의 인구구조 변화 속도와 재정지출 구조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할 수 있다.
한국은 고령화 진전 속도가 매우 빠르고 복지 수요가 본격적으로 확대되는 초입에 있다는 점에서, 현재의 낮은 수준이 미래의 안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다른 선진국은 높은 부채 수준에도 오랜 기간 누적된 제도와 세입 기반, 기축통화 지위, 금융시장 구조 등을 갖춘 경우가 많다. 한국은 같은 기준으로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정부가 강조하는 '전망치 하향 조정' 역시 해석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전망치가 낮아졌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 신호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재정 불확실성 해소를 뜻하지는 않는다. IMF 전망은 국제 유가, 금리, 성장률, 환율, 무역환경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향후 경기 둔화가 예상보다 심해지거나 세수 기반이 약해질 경우 부채비율 경로는 다시 상향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 특히 통상 환경 악화나 수출 부진, 내수 침체가 길어지면 정부의 경기 보강 압력은 커지고 세입은 줄어들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현재의 하향 조정분이 빠르게 상쇄될 수 있다.
재정 전문가들은 해법으로 지출 구조조정과 세입 기반 확충, 재정준칙 정비를 함께 제시한다. 우선 한정된 재원을 성장잠재력 확충과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하고, 효과가 낮거나 중복된 사업은 과감히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선심성 지출이나 단기적 인기 위주의 재정 운용은 장기 부담으로 돌아오기 쉽다.
동시에 세입 기반을 넓히는 논의도 피하기 어렵다. 성장률 둔화로 자연증가 세수가 예전만 못한 상황에서 안정적 재원을 확보하려면 조세지출 점검과 비과세·감면 정비 등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경기 상황에 따라 유연성을 갖되 중기적으로는 재정총량을 관리할 수 있는 준칙 체계를 제도화해야 한다는 주문도 이어진다.
정치권과 정책 당국이 재정 문제를 단기 경기부양 수단으로만 접근해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정은 필요할 때 과감하게 써야 하지만, 그만큼 언제 어떻게 정상화할지도 함께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이미 복지 확대, 지역 균형발전, 산업 전환 지원, 인구 대책, 안보 대응 등 여러 분야에서 재정 수요가 동시다발로 커지고 있다. 어느 한 분야만으로 문제를 설명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일수록 우선순위를 분명히 세우고, 일회성 대책보다 지속 가능한 재정 로드맵을 내놓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IMF는 이번 보고서에서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재정 전반에 대해서도 경고를 내놨다. 글로벌 일반정부부채비율은 앞으로 100%를 넘어 2차 세계대전 직후 수준에 근접할 수 있다고 봤다. 각국이 경기 둔화 대응, 고금리 부담, 복지지출 확대, 지정학적 긴장 심화에 동시에 직면하면서 재정건전성 관리가 한층 어려워졌다는 진단이다.
이런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확인된 셈이다. 특히 개방경제인 한국은 대외 충격에 민감한 만큼 평시의 재정 여력 확보가 더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와 관련해 기획처는 이번 IMF 재정모니터와 관련해 한국의 부채비율이 주요국과 비교해 아직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중장기 재정 여건을 고려해 건전성 관리 노력을 이어갈 필요가 있다는 점도 함께 강조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