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인 줄 알았는데 렌탈”···가전 구독, 총비용·위약금 정보공개 강화 불가피

한국소비자원, 대형 가전 구독 4개사 실태조사···피해구제 3년6개월간 2624건
월 이용료 앞세우고 총 납부액·판매가격 안내 미흡···중도해지 위약금도 최대 30%
기사입력:2026-04-20 12:16:34
사진=LG가전 구독
사진=LG가전 구독
[공유경제신문 안혜린 기자] “구독”이라는 설명만 믿고 냉장고 계약서에 서명한 A씨는 뒤늦게 계약 구조가 할부 구매가 아니라 장기 렌탈에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TV를 열흘 사용한 뒤 철회를 요구한 B씨는 약 50만원의 위약금과 회수 철거비를 안내받았다.

세탁기 계약 과정에서 제휴카드 할인만 강조한 채 6년 약정의 핵심 조건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가전 구독 시장이 빠르게 팽창하는 사이, 소비자는 ‘구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장기계약의 비용과 위험을 충분히 안내받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지난 8일 삼성전자, LG전자, 코웨이, 쿠쿠홈시스 등 4개 사업자의 대형 가전 구독(렌탈) 서비스 운영 실태를 조사한 결과, 총 구독 비용과 소비자판매가격, 중도해지 위약금, 수리 불가 시 조치 기준 등 핵심 정보 제공이 전반적으로 미흡했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각 사 공식 온라인 홈페이지의 상품 판매 페이지와 결제 화면 81개다. 2021년 이후 대형 가전 구독 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 500명에 대한 설문도 병행했다.

조사 결과는 시장 확대 속도에 비해 거래 투명성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3년 6개월간인 2022년부터 2025년 6월까지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가전 구독(렌탈) 서비스 피해구제 신청은 총 2624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2년 636건, 2023년 643건, 2024년 886건, 2025년 6월까지 459건이다.

정수기가 전체의 58.2%로 가장 많았지만, 냉장고·세탁기·에어컨 등 대형 가전 관련 피해도 2022년 16건에서 2024년 39건으로 늘었다. 대형 가전 구독이 새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는 만큼 분쟁도 함께 확대되는 흐름이다.

피해의 중심에는 계약 문제가 있었다. 전체 피해 가운데 계약 관련 불만이 55.1%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고, 품질·A/S 관련이 34.6%로 뒤를 이었다. 계약 관련 불만 1446건 중에서는 계약해지·위약금 문제가 65.7%를 차지했다.

계약 해지 요청 후 처리 지연, 과도한 위약금 청구, 위약금 외 추가 비용 청구가 대표 유형으로 나타났다. ‘구독’이라는 용어가 넷플릭스나 음원 서비스처럼 언제든 비교적 쉽게 해지할 수 있는 구조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실제 계약은 장기 렌탈에 가깝다는 점에서 소비자 혼선이 적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가격 정보 제공 방식이다. 현행 고시는 렌탈서비스 사업자에게 총 비용과 소비자판매가격을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 대상 4개사 중 3개사는 전 품목에 관련 정보를 표시한 반면, LG전자는 일부 품목만 해당 정보를 제공한 것으로 조사됐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LG전자는 총 14개 품목 가운데 8개 품목에서 총비용 표시가 미흡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월 이용료만으로는 실제 부담 규모를 판단하기 어렵다. 특히 대형 가전은 계약 기간이 길고 누적 납부액이 커지는 만큼, 구매와 구독 중 어느 방식이 유리한지 비교하려면 총 납부액 공개가 사실상 출발점이다.

소비자 인식도 이를 뒷받침한다. 대형 가전 구독 경험자 설문에서 계약 시 중요하게 보는 정보는 총 비용이 4.27점, 소비자판매가격이 4.16점으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67.2%는 사업자가 월 요금만 강조하고 총 비용을 명확히 비교해주지 않는 점을 문제로 인식했다. 이는 가전 구독이 초기 목돈 부담을 낮춘다는 장점에도 불구하고, 장기 누적 비용 측면에서는 오히려 소비자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우려와 맞닿아 있다.

위약금 체계 역시 시장 신뢰를 떨어뜨리는 대목이다.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은 의무사용기간이 1년을 초과하는 경우 중도해지 위약금을 잔여 월 임대료의 10%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사 대상 4개 사업자는 모두 이 기준과 다르게 운영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해지 시점에 따라, 코웨이와 쿠쿠홈시스는 품목에 따라 최소 10%에서 최대 30%까지 위약금을 차등 부과했다.

설문에서도 응답자의 31.4%가 자신이 체결한 계약의 위약금 수준을 정확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장기계약일수록 해지 비용은 소비자 선택에 결정적 변수인데, 정작 그 기준이 불명확하거나 복잡하게 설계돼 있다는 의미다.

A/S 불가 상황에 대한 사후 조치 기준도 허술했다. 삼성전자는 부품 미보유 상황에 대한 조치를 비교적 상세히 명시했지만, LG전자·코웨이·쿠쿠홈시스는 A/S 불가 안내 외에 구체적 대체 조치나 보상 기준이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다. 장기계약 도중 사업 중단이나 부품 단종이 발생하면 소비자는 계약기간이 남아 있어도 제품을 정상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소유권 이전 직전 수리 불가를 이유로 제품을 회수하려는 사례는 소비자 불만을 키울 수밖에 없다. 가전 구독 시장이 성숙 단계로 가려면 계약 체결 단계뿐 아니라 계약 이행과 종료 단계까지 책임 구조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실제 소비자 체감 피해도 적지 않았다. 설문 응답자의 62.6%는 가전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며 피해를 경험했다고 답했다. 계약 당시에는 원치 않는 부가서비스 자동 가입 및 권유가 33.5%로 가장 많았고, 제품·서비스 관련 정보제공 미흡 26.5%, 계약 관련 정보제공 미흡 23.6%가 뒤를 이었다.

계약 이행 과정에서는 A/S 불만이, 계약 해지 단계에서는 해지 절차의 어려움과 과도한 위약금 청구가 대표 불만으로 꼽혔다. 이는 판매 단계의 설명 부족이 계약 전 기간에 걸친 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도경 한국소비자원 시장조사국 전자상거래팀 팀장은 “가전 구독은 명칭과 달리 실질적으로 장기 렌탈 계약의 성격이 강한 만큼, 소비자가 총 구독 비용과 소비자판매가격, 중도해지 위약금, 수리 불가 시 조치 기준을 계약 전에 명확히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며 “사업자 역시 월 이용료 중심의 마케팅에서 벗어나 거래조건 전반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시장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은 관련 부처와 조사 결과를 공유해 제도 개선을 건의할 계획이다. 사업자들에게는 온라인 홈페이지에서 전 품목의 총비용과 소비자판매가격을 제공하고, 수리 불가 시 조치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4개 사업자 모두 권고사항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가전 구독이 제조업의 새 수익모델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시장 확대의 전제는 공격적 마케팅이 아니라 계약 구조의 투명성과 사후 책임의 명문화라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안혜린 기자 rin796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