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와 생애말기 필수산업의 활성화] 공급 막는 규제와 인센티브 함정 ④

요양시설은 수가체계, 화장시설은 님비와 행정 장벽에 발목
공공은 감독·안전망, 민간은 공급 확대···제도 손질 없인 수급난 반복
기사입력:2026-04-26 15:22:32
사진=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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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경제신문 김승한 기자] 초고령사회에 따른 생애말기 돌봄·장례 수요 급증의 배경에는 고령화만 있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 나왔다. 노인요양시설은 지역별 비용 차이를 반영하지 못한 수가체계에, 화장시설은 님비와 행정 장벽에 가로막히면서 수요가 몰리는 곳일수록 공급이 더 어려워지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지난 2월 발표한 ‘초고령사회와 생애말기 필수산업의 활성화’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과 화장시설의 수급 불균형은 단순한 시설 부족을 넘어 제도적 병목의 성격이 짙다. 공급이 필요한 지역에 수요가 집중돼도 시장 진입을 막는 규제와 왜곡된 인센티브가 그대로 유지되면서 지역 간 수급 격차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노인요양시설의 핵심 문제로는 일당 정액수가제가 꼽힌다. 현행 수가체계는 전국 단일 기준으로 운영돼 지역별 부동산 비용 격차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시설 설치자는 토지와 건물의 소유권을 확보해야 한다. 수요가 많은 대도시일수록 진입 비용이 높고, 그만큼 공급 유인은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실제 분석에서도 이런 왜곡은 드러난다. 토지·건물 소유에 따른 기회비용까지 반영하면 서울의 노인요양시설은 비급여 수입을 제외한 기준으로 월 800만원 적자 구조인 반면, 경남은 2천만원 흑자 구조가 가능한 것으로 추산됐다. 수요가 충분한 도심에서 신규 진입이 막히고, 상대적으로 부동산 비용이 낮은 지역에 공급이 몰리는 배경이다.

장시령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미시제도연구실 과장은 “생애말기 필수산업의 수급 불균형은 고령인구 증가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며 “수요가 집중되는 지역에서 공급이 이뤄지기 어렵게 만든 제도와 인센티브 구조를 함께 손질해야 한다”고 말했다.

화장시설은 다른 방식으로 공급이 제약된다. 화장서비스의 편익은 사회 전체가 누리지만 비용과 불편은 설치 지역에 집중되는 구조 탓에 대표적인 기피시설로 인식된다. 이 과정에서 주민 반발이 행정적 제약으로 이어지면서 신규 설치가 지연되거나 무산되는 사례가 반복된다고 한은은 진단했다.

실제 서울추모공원 분쟁이나 하남시 계획 백지화 사례처럼 지역 반발이 공급 지연으로 이어진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국 화장시설 62곳 가운데 61곳이 공설이라는 점도 민간 진입이 사실상 제한된 현실을 보여준다. 수요가 많은 대도시권일수록 설치 장벽은 더 높아지고, 그 결과 원정 화장과 장례 지연이 반복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증분석 결과도 이런 진단과 맞닿아 있다. 면적당 선거인 수가 많은 지역일수록 화장시설 설치 확률은 낮아지는 것으로 추정됐다. 인구가 밀집하고 이해관계가 복잡한 곳일수록 설치가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결국 수요가 몰리는 지역일수록 공급이 더 막히는 역설이 반복되는 셈이다.

한은은 노인요양시설의 대안으로 ‘귀속임대료 비급여화’를 제시했다. 요양 서비스 자체는 지금처럼 공적으로 보장하되, 토지·건물 소유에 따른 기회비용은 법정 비급여 항목으로 분리해 이용자가 부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대도시의 높은 부동산 비용을 일정 부분 보전해 도심 내 공급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다만 이용자 부담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사전 저축제도나 주택연금 연계 같은 보완 장치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화장시설에 대해서는 병원 장례식장 내 소규모 화장시설 도입을 대안으로 내놨다. 기존 공간을 활용해 도심 내 분산형 공급을 늘리면 심리적 거부감을 줄이고 입지 갈등도 완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임종부터 장례, 화장까지 한 공간에서 마무리할 수 있어 유족 편의도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의료법과 용도지역 관련 규제 정비, 설치비와 기술 지원 등이 병행돼야 한다고 한국은행은 밝혔다.

장 과장은 “향후 25년간 생애말기 고령인구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공공 재정만으로 모든 수요를 감당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공공은 관리·감독과 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하고, 공급 확대와 서비스 혁신은 민간이 맡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승한 기자 sharegridlab@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