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은 지난 10일 발표한 ‘경제상황 평가(2026년 4월)’에서 올해 취업자 수 증가 규모가 기존 전망치인 17만명 수준에 대체로 부합할 것으로 예상했다. 중동전쟁과 건설경기 부진이 고용의 하방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일자리 확충이 이를 상당 부분 상쇄할 것으로 봤다. 다만 민간 고용 회복은 예상보다 더디고, 공공 일자리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표면적인 고용지표만 보면 급격한 악화 신호는 뚜렷하지 않다. 취업자 수는 늘고 있고 실업률도 급등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은은 이번 자료에서 취업자 수 증감보다 노동시장 내부 흐름을 더 눈여겨봤다. 채용과 해고가 함께 줄어드는 시장에서는 겉으로 드러난 수치만으로 실제 고용 사정을 제대로 읽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은행 고용동향팀 이영호 과장은 국내에서도 2023년 이후 해고율과 채용률이 함께 낮아지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취업자 수와 실업률이 겉으로는 양호해 보여도 노동 이동이 둔해지면 시장 활력이 떨어지고 유휴 인력이 커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이 이번에 짚은 핵심은 국내 노동시장도 미국처럼 ‘저해고·저채용’ 구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에서는 팬데믹 이후 해고율이 이례적으로 낮은 수준을 이어가는 가운데 채용률이 꾸준히 떨어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3년 이후 비슷한 흐름이 나타났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기업들이 경기 둔화 국면에서도 인력을 쉽게 줄이지 않는 대신, 새 인력을 뽑는 데는 더 조심스러워졌다는 뜻이다.
한은은 이런 현상의 배경으로 구조적 요인을 들었다. 우선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붙잡아두려는 경향이 강해졌다고 봤다. 인력난을 겪은 기업들이 경기 둔화에도 해고보다 인력 유지를 택하면서 해고율이 낮아졌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대외 의존도가 높은 국내 경제 구조상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기업들이 신규 채용에는 더 신중해졌다는 분석도 내놨다.
인공지능(AI) 확산도 채용 둔화의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한은은 최근 AI 기술 확산이 특히 청년층 신규 채용을 제약하고 있으며, 실제로 AI 노출도가 높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에서 채용 둔화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했다. 반복 업무를 대체하는 기술이 빠르게 퍼질수록 기업이 새 인력을 뽑을 유인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구구조 변화도 저해고 흐름을 더 굳히는 요인으로 꼽혔다. 최근 노동공급의 중심축이 청년층에서 장년층으로 빠르게 옮겨가면서 기업은 새 인력을 구하기 더 어려워졌다. 이럴수록 기존 인력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고, 그만큼 해고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특히 이런 흐름은 임시·일용직과 300인 미만 사업장 같은 취약 부문에서 더 뚜렷하게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런 구조가 청년층과 실직자에게 더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한은은 저해고·저채용 환경에서는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오려는 청년이나 일자리를 잃은 구직자가 더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히게 된다고 봤다.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지키는 데 무게를 두면 신규 채용은 줄 수밖에 없고, 그만큼 노동시장 바깥에 있는 이들의 기회는 더 좁아진다. 경기 충격이 닥치면 기업들이 채용을 더 줄일 가능성이 커 취약계층일수록 타격이 집중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청년층 문제는 이번 자료에서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한은은 최근 청년고용 부진이 단순히 취업자 수 감소에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봤다. 청년층 고용이 줄면 노동시장 유입이 약해지고 기업의 신규 채용 여력도 줄어든다. 그 결과 고용시장 순환 자체가 둔해지면서 취업자 수나 실업률 같은 겉지표보다 더 깊은 구조 변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발적 이직 감소도 같은 흐름 속에서 읽힌다. 한은은 저해고·저채용 현상이 노동자의 자발적 이직까지 위축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자발적 이직이 활발해야 빈 일자리에 대한 대체 수요가 생기고 채용도 뒤따르는데, 최근 자발적 이직률이 낮아지면서 이런 대체 채용이 크게 줄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시장 순환이 약해지고 있다는 또 다른 신호로 해석된다.
한은은 겉으로 드러난 고용지표만 보고 노동시장 상황을 낙관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해고·저채용 환경에서는 취업자 수 증가세나 낮은 실업률이 유지되더라도 실제로는 일자리 이동이 멈추고 시장 활력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 이동이 둔한 시장에서는 기존 재직자는 고용을 유지하는 반면 새로 들어오려는 사람은 더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히게 된다. 결국 고용시장 안과 밖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뜻이다.
이영호 과장은 저해고·저채용 현상은 구조적 요인의 영향이 큰 만큼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취업자 수와 실업률 같은 주요 지표가 양호하더라도 노동시장 활력이 떨어지고 유휴 인력이 커질 수 있다는 점, 청년층과 실직자 등 취약계층의 노동시장 진입이 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고용 분석은 결국 ‘외부지표는 양호하지만 내부는 경직된 노동시장’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취업자 수만 보면 고용이 크게 악화하지 않은 듯 보일 수 있다. 그러나 해고도 채용도 줄어든 시장에서는 일자리 문이 더 좁아지고, 그 부담은 청년층과 실직자에게 먼저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다음 회차에서는 수도권 주택시장 ‘키맞추기 장세’ 분석을 통해 자산시장 변화가 실물경제와 어떻게 맞물리는지 짚어본다.
김봉수 기자 news@seconomy.kr



















